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음악회가 있었다. 가을은 깊어가고 이제 곧 겨울이 올 것이다. 계절탓인지 하이네의 시를 노래하는 슈만 가곡의 울림은 컸다. 슈만과 클라라의 러브스토리는 클래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브람스와의 삼각관계가 더해지면 그 자체로 한 편의 소설이 된다. 가곡을 들으니 갑자기 슈만의 러브스토리를 영상으로 만나고 싶었다. '슈만에 관한 영화'를 검색하여 '클라라'를 보게 되었다.
슈만은 자신의 스승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이었던 클라라와 사랑에 빠진다. 클라라는 아버지의 교육으로 피아니스트로서 성장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곡에서도 재능이 있었다. 슈만은 클라라가 18세 때 청혼하여 그녀의 승낙을 얻지만 그녀의 부친은 이를 반대한다. 슈만은 비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고 결국 승소하여 클라라와 결혼한다.
영화는 슈만부부가 결혼한 이후 네명의 자녀를 둔 부부로서 생업인 클라라의 공연을 위해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클라라의 연주는 성공적이었고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다. 그 순간에도 클라라는 자신의 남편인 슈만을 무대 위로 불러 작곡가 슈만에 대한 그녀의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브람스는 바로 그 공연장에서 클라라의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의 표정으로 그가 클라라를 향한 사랑에 빠졌음을 알 수 있다. 공연이 끝나자 브람스는 슈만에게 자신이 작곡한 곡에 대한 평을 부탁하였는데 회신이 없었다며 악보를 돌려달라고 한다. 당시 브람스는 부둣가 선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가난한 청년이었다. 클라라의 설득으로 슈만은 클라라와 함께 브람스를 찾아와 악보를 돌려준다. 클라라는 브람스의 연주하는 모습에 빠져 선술집 아낙들이 자신의 옷에 달린 장신구를 훔치는 것도 모른다.
슈만은 신경쇠약과 청신경 장애로 힘들어하고 가족들은 이곳저곳을 떠돌다 슈만이 음악감독 자리를 얻게 되어 모두가 기뻐한다. 브람스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가지고 다시 슈만을 찾아온다. 슈만과 클라라는 브람스의 음악적 재능에 반하고 결국 브람스는 슈만의 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브람스는 슈만부부의 아이들을 다정하게 보살펴주는 등 클라라에게 힘이 되고 싶어 한다.
슈만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제대로 음악감독 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클라라가 슈만을 대신하여서라도 자리를 보전하려고 하지만, 당시 여성이 음악감독자로서 지휘를 한다는 데에는 심한 거부감이 있었고, 슈만의 상태는 악화되기만 하여 결국 그 자리를 잃고 만다. 클라라는 아픈 남편과 네 명의 아이들을 돌봐야하고 다섯째 아이를 임신하는 등 늘 생계를 걱정해야만 했다. 한편 브람스는 클라라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를 눈치 챈 슈만은 클라라에게 격하게 반응한다. 결국 브람스마저 떠난다.
신경쇠약이 극에 달하자 슈만은 자살시도까지 하는데 결국 정신병원 입원을 결정한다. 혼자 남겨진 클라라는 집기들을 팔아가며 겨우 연명하면서 다섯째 아이를 출산한다. 브람스는 음악적인 재능을 인정받아 돈을 벌게 되자 이를 클라라에게 보내고 정신병원에 있는 슈만을 찾아 문병한다. 슈만은 치료에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상태가 현저히 악화되어 정상적인 대화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브람스는 클라라를 병원까지 데려와 슈만의 마지막 순간 재회하게 하고 결국 슈만은 죽는다.
클라라는 숙소로 돌아와 절망적으로 침대에 쓰러지고 브람스는 클라라를 안으며 사랑을 고백하는데,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클라라는 브람스의 청혼을 받아주지 않았고, 브람스는 클라라가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며 클라라와의 우정과 신뢰를 이어갔다는 자막이 뜬다.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슈만부부가 처한 현실의 고달픔을 매우 직선적으로 감상적이지 않게 그려낸다.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의 감정 역시 남녀 사이의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라기 보다는 클라라가 처한 현실이 너무 각박한 상황에서 브람스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시각으로 그려진다.
나의 경우, 가곡 시인의 사랑을 비롯하여 어린이의 정경, 트로이메라이 등 슈만의 낭만적인 곡들, 특별히 피아노곡을 좋아했다. 음악만을 생각하면 그가 겪은 인생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 클라라, 브람스도 모두 낭만적인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었을 뿐 그들이 처한 현실이 어떠하였는지 전혀 몰랐다. 신경쇠약과 청신경장애로 환청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슈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공연을 다녀야 했고 아이들의 엄마로서 책임을 감당해야 했던 클라라의 모습은 낭만주의 음악의 낭만적인 주인공들이 아니었다.
영화는 독일스럽다고 해야 할지, 직선적이며 담백한 방식으로 참담한 현실에서도 끝까지 작곡가 슈만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지킨 클라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신의를 지키며 슈만의 가족들을 돕고 슈만이 죽고나자 비로소 사랑을 고백하는 브람스의 모습은 사랑의 순결함과 고귀함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 마지막,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당신이 죽으면 나도 함께 죽어 클라라의 영혼을 슈만에게 자신이 데려다 주겠다고 속삭이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브람스는 클라라가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고 하니 끝까지 약속을 지킨 셈이다. 영화 속 연주되는 슈만과 브람스의 명곡들이 더욱 극적인 느낌을 준다.
현실적이고 당당한 여성의 모습으로 클라라를 연기한 주인공 여배우가 영화 타인의 삶의 여주인공이었다니, 마르티나 게덱의 개성 또한 매력있다. 제대로 본 것인지 모르겠는데 브람스를 연기한 배우가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까지 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찾아보니 슈만은 클라라와 9살 차이, 클라라와 브람스는 14살 차이라고 한다. 브람스의 사랑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던 클라라의 입장이 더 이해되었다. 그럼에도 쇼팽과 조르주 상드, 마크롱 대통령과 부인 브리지트의 러브스토리가 떠오르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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