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 1895년 1월 7일 ~ 1960년 12월 7일)은 루마니아의 피아노 연주자이다. 고전파와 초기 낭만파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 특히 모차르트와 슈만의 피아노 작품의 연주가 호평을 받는다. 비엔나와 파리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파리 콩세르바투아르를 마쳤다. 1950년을 전후로 하여 각광받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나치 독일이 프랑스로 진주하면서,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마르세이유를 경유해 스위스로 입국한 하스킬은 스위스와 네덜란드를 활동의 기반으로 삼게 된다.
18세에 세포경화증에 걸려 척추는 뒤틀리고 어깨뼈는 주저앉아 곱사등이 되었다. 하스킬은 세상을 떠난 65세까지 그렇게 비틀린 몸으로 피아노를 쳤다. 가까운 이들에게 연주의 고통을 종종 호소하기도 했다. 하스킬은 브람스, 리스트, 쇼팽, 무소르그스키, 라흐마니노프 등을 많은 음악가의 작품을 연주했는데, 병으로 7년간의 칩거를 마친 뒤에는 모차르트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연주의 고통에 관하여1956. 브장송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하기 직전, "리사이틀과 협주곡은 무서워"라는 메모를 남겼고 또 파울 자허의 지휘로 스튜디오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녹음할 때도 "무섭고 끔찍해!"라는 메모를 남겼다고..
2차 대전 중에는 스위스에서 활동할 무렵 시신경에 생긴 종양으로 늘 두통에 시달리며 시력마저 좋지 않은 가운데 공포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러다 종전 후 치료를 받고 다시 모차르트를 연주하며 음악인으로서 활동하였다.
하스킬은 선천적으로 병약하고 사교적이지 못하였으나 그녀에게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열광적인 청중이 있었다. 그녀가 고통 속에서 연주한 모차르트는 오늘날 그녀가 남긴 유산이 되었다.
그녀는 1953년부터 명바이올리니스트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주로 협연하였다.
1960년 그뤼미오와의 연주를 위해 브뤼셀에 갔다가 브뤼셀역에서 계단을 내려가다 쓰러져 혼수상태에서 헤매다 다음날 아침 사망했다. 잠시 의식을 회복했을 때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아무래도 내일 연주는 어려울 것 같구나. 그뤼미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다오"였다고 한다.
클라라 하스킬의 무덤은 프랑스 파리의 몽트파나세 묘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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