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란쳇의 어머니는 남편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죽은 뒤 멜버른 근교에서 혼자 세 아이를 키웠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녀가 갖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정은 놀랍도록 끈끈하다.
"저는 제가 아버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저에게는 아버지에게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몸짓으로 표현하는 언어 방식이 있으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따로 떨어져 살아온 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실험 연구도 있잖아요. 비록 오랜 시간 헤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기본 유전자가 거의 흡사하게 정렬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작이나 버릇이 비슷하다는 거요. 우리가 하는 행동의 일부는 관찰에 의해 습득된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일부는 유전적인 것이죠. 그러니까 저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분명히 갖고 있어요. 다만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기억을 끄집어낼 뿐이죠. 몇 가지만큼은 저도 확실하게 기억해요. 우리 아버지는 반어적인 표현을 즐겨 쓰는 뛰어난 유머 감각의 소유자였어요."
아버지와 관계를 쌓지 못하는 대신 블란쳇은 할머니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덕분에 사람이 늙어가는 과정에 대해 철학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교훈은 바로 나이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블란쳇은 나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녀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세월의 흐름에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노녀, 더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삶 전체가 규정된다고 믿는다.
"모든 것은 결국 노화와 죽음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렸어요. 인생을 표면적으로만 살 것인지 아니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가 생기는 목표를 세우고 살아갈 것인지 그것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죠. 사람이 자신이 늙어가는 과정을 포용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그녀가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 무수한 여인상을 떠올려보라. <엘리자베스>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에비에이터>에서 연기한 당대의 스타일 아이콘 캐서린 햅번,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요정 갈라드리엘, <노트 온 스캔들>에서 10대 남학생과 사랑에 빠지는 철없고 순수한 여교사까지.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여성의 연약한 외면 속에 존재하는 강인함이에요. 저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성공한 여성을 동경하고 우러러보지 않아요. 그보다는 실패와 실수를 통해 발전하고 계속 전진해 나가는 여성을 존경하죠."
- 인스타일 2009. 8. 커버스코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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