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teur literature

crack 1 - a little shake

조앤디디온 2018. 11. 10. 18:48

1.

처음 그녀가 병원을 방문했을 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마치 친한 친구에게 인사하듯, 마치 그 전에도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다는 듯한 친근함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만으로도 당신은 내가 아는 한 좋은 사람이예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환자에 대한 인적사항으로 나는 그녀의 나이가 나보다 2살 연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기석에 있다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느꼈던 첫인상은 그냥 평범했다. 다만 나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뭐랄까 외모만으로는 딱히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의사로서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본 경험에 의할 때 그녀는 평범한 전업주부는 아니었다. 그녀의 가방과 옷차림이 사무직에 종사하는 직장인이라는 것과 근무시간 중 시간을 내어 진료를 받으러 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2.

이비인후과 진료과목 특성 상 환절기마다 어느 정도의 환자들이 있었고, 지방 중소도시 내에 있는 붐비지도 한적하지도 않은 지역에 위치한 개업의였기 때문에 병원 운영은 매우 성공적일 정도는 아니었어도 그럭저럭 잘 되는 편에 속하였다. 개업 초기 젊은 열정과 어느 정도의 욕심이 동력이 되고 전문의를 획득하기까지 훈련되어 온 책임감 덕분에 나의 병원은 지역 내에서 그럭저럭 명성(?)’을 얻어 가고 있었다.

 

환자들은 대부분 호흡기가 약한 어린 아이들이거나 저학년의 학생들이었다. 그렇다보니 내가 병원에서 보내는 대부분은 아이들 그리고 그들과 동행한 보호자들과 대면하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가끔씩 환절기마다 감기로 병원을 찾거나 축농증이나 이명 등으로 병원을 찾는 성인환자들이 있었다.

 

3.

내가 그녀에게 호기심 또는 그 이상의 어떤 감정을 갖게 된 것은 그녀의 질환이 가장 주된 원인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녀는 처음 방문할 때 왼쪽 귀에 붕대를 한 채였다.

선천성 이루공으로 드물지만 없다고 할 수 없는 질환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수술적 치료를 권유하는 대학병원 전문의의 권고를 거절하고 일반병원을 찾아 내가 운영하는 이곳을 찾게 된 것이다.

 

선천성 이루공은 귓바퀴가 시작되는 부분에 선천적으로 작은 구멍이 생기며 이 구멍에서 고름이나 진물이 나오고 염증이 생기는 증상을 말하는데, 발생원인은 태아의 안면과 귀가 형성될 때 유합이 불완전했기 때문이며 유전적인 원인이 대부분이다. 선천성 기형의 일종이기는 하나 감염만 없다면 자신이 기형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조차도 알 수 없는 존재감 없는 기형이다.

 

, 막상 감염이 되면 항생제를 처방받아 염증을 가라앉혀야 하고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해당 부위의 피부조직을 절개하여 피지와 고름을 제거하고 염증이 소멸될 때까지 항생제 투약을 계속하여야 한다. 중증질환은 아니지만 환자로서는 민감한 부위에 염증이 오랜 기간 지속됨으로 인하여 상당 기간 통증과 불편을 겪어야 한다. 염증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피부 조직 사이에 있는 구멍을 제거하여야 하는데 수술부위의 특성 상 전신마취가 필요하다.

 

그녀는 전신마취가 싫다는 이유로 수술적 치료를 권하는 대학병원에서 내가 운영하는 이곳 병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언젠가 내가 선천성 이루공에 관하여 기고했던 글을 보았다고 방문경위에 적어놓았다. 의사로서의 부지런함이 환자유치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환자였다.

 

4.

그녀는 환자 의자에서 왼쪽 귀를 나에게로 향한 채 마치 지금부터 무척 아프겠지만 잘 참아야지 하는 듯한 태도로 두 눈을 감고 양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그 동작을 보면서 그녀가 어떤 종류의 것이든 고통을 견디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붕대를 떼어내고 대학병원에서 이미 절개하여 둔 환부를 열어 내부에 있는 피부조직을 소독했다. 환부가 다소 깊었고 염증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일응의 처치 이후 관을 심어 피부 조직 내에 있는 고름이 흘러나오도록 하고 다시 붕대로 덮었다.

 

소독이 필요한 환자이다보니 보통 환자들보다 진료시간이 길어졌다. 그녀를 진료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자 역시나 수간호사 이미정이 문 앞에서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5.

이미정은 와이프의 언니다. 와이프가 나를 믿지 못한다거나 의심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일종의 안전장치처럼 와이프와 처가에서 심어놓은 사람이다.

 

앞서 밝혔듯이 나는 수많은 환자와 그의 보호자들을 만난다. 환자의 특성 상 보호자들은 대부분 여성으로 아직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엄마들이다. 나에게 그들은 여성이 아닌 그냥 보호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미정은 여성보호자가 있거나 성인인 여성환자 진료가 있을 때면 종종 진료실 앞에서 와이프와 처가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6.

나는 결코 미남이라 할 수 없다. 40대 초반의 얼굴치고는 동안이고 하얀 피부 때문에 나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인생의 반을 성실하게 살아온 결과 외모를 통하여 그와 같은 성품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다. 크지 않은 키는 열등감을 갖기에 충분했고 살짝 통통한 몸은 불만스럽진 않아도 늘 아쉬웠다. 여성들에게 매력적이라고 할 만큼 내세울 것이 없다. 의사라는 직업이 그나마 나를 포장해주는 일종의 외피였다.

 

거기에 병원을 개원하고 40대에 들어선 이후 머리숱까지 줄기 시작하였으니,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에는 객관적일 수 없다.

 

나는 이런 외적인 결함을 극복하고자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가능한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친절한 미소를 짓는다. 실제로 나의 미소는 아이들보다도 아이들의 보호자인 엄마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엄마이지만 여성이기도 한 그녀들은 극히 일부지만 그런 나의 미소에 노골적인 환대를 드러내기도 한다. 때로 의사의 지인이라는 별반 유익도 없는 신분상의 혜택을 누리고자 의도적으로 다소 계산된 호의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순전히 나의 매력 때문에 호의를 표하는 이는 없었다.

 

 

7.

와이프는 달랐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시원시원한 눈과 코, 입을 지녔고 크지 않은 키였으나 다소 마른 날렵한 몸매에 단연 어디에서도 눈에 뜨는 미모의 소유자였다. 의사로서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중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획득한 샘이었다. 미인인 아내 말이다. 그래서인지 외모에 대한 나의 아쉬움은 아내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와이프는 어린 시절부터 장모님과 언니들 사이에서 여성성을 어필하는 전문성(?)을 습득한 덕분에 세련된 옷차림과 천박하지 않을 정도의 애교를 부릴 줄 아는 상당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지도교수님 지인의 소개로 와이프를 처음 만났을 때, 와이프는 그때까지 소개팅이나 맞선을 몇 차례 보았는데 ‘after’를 받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와이프는 조금도 수줍어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과 좋은 집안을 배경으로 한 결혼 상대방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일종의 확신이 와이프를 선명하고 담백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하였다.

 

결국 나 역시 와이프에게 몇 차례 만남을 더 요청하였고 와이프와는 2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연애를 하였다. 와이프는 처음에 신랑감 후보군에 있는 남성들과 나를 견주는가 싶더니 별다른 매력도 없는 나를 선택하여 주었다. 언젠가 잠자리에 들기 전 와이프는 지나가는 말로 던지듯이 말했다.

당신의 그 무심한 표정이 좋아. 세상이 무너진다해도 당신은 담담할 거 같아. 그게 왠지 믿음직한 거 있지..”

 

 

8.

붕대 봉합을 마치고 진료의자로 돌아와 진료의 내용을 설명하고 컴퓨터에 처방전을 입력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바른 자세. 통증을 참느라 다소 붉어진 볼과 입술이 가지런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쌍꺼풀이 없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 속에 검은 눈동자가 정면에서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처음 그녀의 목소리가 그러했듯이 그녀의 그 자세와 얼굴에서도 내가 아는 한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예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약간의 동요가 심장의 어느 부위를 건드렸다.

 

나는 서둘러 예의 평정심을 갖추고 다음 진료일정을 말하여 준 후 다음 환자를 맞았다. 그녀가 진료실을 나가면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어떤 온기도 함께 사라진 듯했다. 진료실은 다시 기계적인 공기로 돌아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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