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Melodrama in three acts' 글자가 눈에 띄었다.
'melodrama'의 의미를 찾아보니, '연애 감정을 이야기의 축으로 삼는 장르. 액면 그대로의 뜻은 음악과 드라마가 결합된 이야기 형식'이라고 하거나 '서양 연극에서 덕망있는 사람이 사악한 사람에 의해 파란곡절을 겪다가 결국 미덕이 승리하는 비현실적인 줄거리로 이루어진 감상적인 드라마' 라고 설명된다. 고상한 남자주인공, 오랜 고난을 겪는 여자주인공, 냉혹한 악한과 같은 틀에 박힌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며, 인물성격의 전개보다는 선정적인 사건이나 화려한 무대장치에 초점을 맞추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그런 점에서 진정한 'melodrama' 라고 할 수 있다.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Arena di Verona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에서 실황을 녹화한 작품을 보았다.
비올레타 발레리 역을 연기한 에르몬넬라 야호 Ermonela Jaho 의 연기력이 정말이지 압권이었다. 오페라에서 음악적인 부분은 당연 중요한 요소겠으나, 에르몬넬라 야호의 연기를 보자니 배우의 연기 또한 오페라에서 놓쳐서는 안될 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작품의 특성 상 여주인공의 비중이 워낙 중요하다보니 그녀의 연기가 더욱 돗보이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녀의 연기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얼마나 '비올레타'에 몰입했었는지 공연을 마치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올레타'의 감정선을 따라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곡을 이어갔다. 음악에 관한 비전문가로서 음악성에 대한 전문적 평가는 할 수 없겠으나, 적어도 비올레타의 연기만큼은 최고였다고 말 할 수 있다.
오페라를 직접 현장에서 보는 감흥은 또 달랐겠지만...(로마 원형경기장에서의 오페라라니 상상만해도 멋지다!) 실황녹화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스크린이라는 매체를 통해 배우들의 연기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묘미가 있었다.
[1막]
파리의 유명한 사교계 여성 비올레타 발레리. 비올레타의 살롱에서 화려한 파티가 열린다. 비올레타는 폐병에 걸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오직 쾌락만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고 노래하며 파티를 즐기자고 외친다. '오직 쾌락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포도주는 우리의 슬픔을 날려버린다'고 노래한다. 비올레타의 친구인 플로라는 자신의 후원자인 도비니 후작과 함께 파티를 즐기고, 젊은 귀족 청년 알프레도 제르몽은 고향을 떠나 파리로 온지 얼마되지 않아 우연히 비올레타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가 비올레타의 파티에 와서 비로소 그녀를 만난다. 그런데 이미 비올레타에게는 그녀를 흠모하는 두폴 남작이 있었다. 두폴 남작은 1년이 넘도록 비올레타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아직 그녀에게 제대로 된 사랑고백을 한 적이 없었다.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여흥에 따라 다함께 너무나도 유명한 '축배의 노래'를 부른다.
축배의 노래가 끝나고 비올레타가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병색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걱정을 하고 비올레타는 옆방으로 가서 춤을 출 것을 권유하고는 혼자 남는다. 이때 알프레도는 혼자 남은 비올레타를 찾아와서 자신이 그녀에게 사랑에 빠졌으며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를 절절히 노래한다. 비올레타는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고 삶은 오직 쾌락일 뿐이라고 비웃으면서 알프레도의 진심을 의심한다. 그러자 알프레도는 그녀가 아직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해서라며, 어느 날 Un di', felice, eterea' 를 노래한다. 자신의 사랑이 1년이 넘었으며 어느 화려한 날에 그녀가 자신의 삶으로 들어왔다고, 신비롭고 고귀한 그 사랑은 고통과 기쁨이 되었고 온 우주의 떨리는 맥박과도 같았다고 진심을 다해 고백한다. 이에 대하여 비올레타는 오히려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을 떠나라며 자신은 우정만을 원할 뿐 사랑은 원하지 않는다고 거부하면서 테너와 소프라노 두 사람의 이중창이 흐른다.
그러나 알프레도의 진심을 느낀 것인지 비올레타는 동백꽃 한 송이를 주고 알프레도는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었다며 환희에 빠져 떠난다.
새벽이 되자 파티를 끝내고 모두들 돌아간다. 혼자남은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의 말이 마음에 남아 한편으로는 진실한 사랑이란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며 불안해하면서도 그 어떤 남자도 자신을 불타오르지 못하게 했는데 그가 사랑을 깨우고 새로운 열정을 안겨준다며 그로 인하여 방탕한 생활을 끝낼 수 있을지 스스로 자문한다. 그러다가 다시 이내 부질없다며 쾌락에 빠져 삶을 즐기자고 하는데 멀리서 아련하게 알프레도의 고백이 다시 울리고 비올레타는 미쳤다고 하면서도 그의 고백에 따라 이중창을 이어 부른다.
[2막]
o 1장 - 무대는 바뀌어 파리 교외 알프레도의 집.
알프레도는 홀로 앉아 비올레타가 3개월 전 자신을 선택하여 파티와 향락을 끊고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하여 오직 당신께만 충실한 삶을 원하다는 고백을 나누고 있음에 행복감을 노래한다. 그때 비올레타의 하녀 아니나가 등장하고 알프레도가 어디에 다녀오는지 묻자 생활비 때문에 비올레타가 말과 마차 등 물건들을 팔고 있다고 얘기해준다. 알프레도는 수치스러워하며 자신을 책망하고 돈을 구하겠다면서 파리로 떠난다.
비올레타는 집으로 돌아와 중고품거래상을 기다린다. 생활비 때문에 힘은 들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
이 때 한 노신사가 비올레타를 찾아오는데 처음에 비올레타는 그가 중고품거래상인 줄 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알프레도의 아버지 조르조 제르몽이었다. 그는 비올레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알프레도가 비올레타로 인하여 가족들을 떠났다고 말한다. 비올레타는 자신이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알프레도를 위하여 헌신하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하느님께서도 과거를 용서하셨다고 하면서 자신이 알프레도를 위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있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프레도의 부친 조르조 제르몽은 알프레도에게 약혼녀가 있음을 알리면서 그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비올레타에게 헤어져달라고 부탁한다. 비올레타는 자신은 이제 친구도 가족도 없고 끔찍한 질병에 걸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알프레도와 헤어진다면 그 고통으로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매달린다. 그러나 조르조는 희생은 위대한 것이라며 사랑도 변하는 것이고 비올레타의 젊음이 사라지면 알프레도의 사랑도 사라질 것이라고, 백일몽에서 깨어나라고, 알프레도를 포기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서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조르조 제르몽은 바리톤의 저음으로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조르조 제르몽은 비올레타로 하여금 알프레도에게 거짓으로라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한 후 떠나라고 충고한다.
비올레타는 괴로워하면서 결국 조르조 제르몽의 권고를 받아들인다. 그녀는 조르조 제르몽에게 알프레도의 약혼녀에게 자신이 불쌍한 희생자로서 알프레도를 양보하였노라고 전하여 달라고 한다. 자신은 곧 죽을텐데 알프레도에게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려달라고, 죽는 순간까지 사랑을 간직하겠노라고, 자신의 희생을 알프레도에게 꼭 알려줄 것을 요청한다. 조르조 제르몽이 떠나려하자 자신도 딸처럼 안아달라(조르조 제르몽은 알프레도의 약혼녀를 자신의 또 다른 자식 딸이라고 말했었다.)고 하지만 조르조 제르몽은 그럴 수 없다고 하고 떠난다.
홀로 남은 비올레타는 하느님께 용기를 달라고 애절하게 노래한다. 비통함에 빠져 알프레도에게 편지를 쓴다. 알프레도가 파리에서 돌아왔으나 비올레타는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알프레도는 왜 그렇게 슬퍼보이느냐며 비올레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지만 비올레타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안아달라, 사랑해달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릴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 때 부르는 비올레타의 노래가 가장 마음을 울린다.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귀여운 여인]에서 두 사람이 함께 오페라공연을 보는데, 바로 그 오페라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였고, 오페라가 처음이라는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은 비올레타의 노래에 눈물을 참느라 애쓰는 장면이 있는데, 그 때 흐르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다.
비올레타가 어디론가 떠나고 알프레도는 그녀가 물건을 팔러 간 줄로만 아는데 이때 비올레타의 편지가 전해진다. 편지는 이별의 내용이었고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의 편지를 읽고 있을 때 부친 조르조 제르몽이 등장한다. 그는 〈프로벤차 고향의 하늘과 땅을 너는 기억하니? Di Provenza il mar, il suol〉를 부르며, 가족에게로 돌아오라고 프로방스 고향 땅의 빛나는 태양을, 그곳에서의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프레도는 격하게 거부하며 비올레타가 파티를 찾아 자신을 떠났다면서 그녀를 찾겠다고 외치고는 파리로 떠난다.
o 2장 - 다시 파리 비올레타의 친구 플로라의 저택.
플로라는 후원자 도비니 후작과 함께 파티를 열고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비올레타와 알프레도가 헤어졌다는 소문을 수군거린다. 파티는 무르익어 집시여인들이 춤을 추며 점을 보고 투우사들의 힘찬 노래와 춤이 이어진다. 알프레도가 등장. 그는 술에 취한 채 비올레타의 소식을 묻는 사람들에게 알게 뭐냐는 식으로 모른다고 말하고는 파티를 즐긴다. 뒤이어 비올레타가 두폴 남작과 함께 등장한다.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에게 도망간 여자라며 원망하고 비아냥댄다. 두폴 남작은 비올레타로부터 알프레도를 떼어놓으면서 카드게임을 하자고 제안하는데 알프레도가 이에 응하여 돈을 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비올레타는 괴로워한다.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에게 함께 가자고 하지만 비올레타는 남작을 사랑한다고 말해버린다. 격분한 알프레도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도박에서 딴 돈으로 비올레타가 그동안 생활비를 댄 돈은 자신의 빚이라면서 이를 갚겠다면서 그녀에게 돈을 던진다. 사람들은 놀라서 비올레타에게 모욕을 준 알프레도를 비난하며 합창한다.
알프레도의 부친 조르조 제르몽이 등장하여 알프레도를 책망한다. 알프레도는 질투와 분노 때문이었다고 후회하면서 비올레타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노래하고,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향한 사랑을 노래한다. 언젠가 그가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느님께서 알프레도의 괴로움을 덮어주실 것을 기도하고, 자신은 죽어서도 그를 사랑하겠노라고 노래한다.
[3막]
파리. 비올레타의 침실.
비올레타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하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하녀 아니나에게 물을 청한다. 그녀의 주치의 그랑빌 박사가 와서 그녀의 상태를 살핀다. 그녀는 육신은 고통스럽지만 마음은 평화롭다고, 믿음은 고통 후에 위로를 가져온다고 말하고 그랑빌 박사는 좋아질거라며 위로한다. 그러나 그는 돌아가면서 아니나에게 비올레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고는 떠난다.
거리는 사육제로 붐비고 있다. 비올레타는 하느님께서 큰 기쁨 속에서도 고통받는 이들의 상처를 잘 알고 계실 것이라면서 아니나에게 남은 돈 중의 일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한다. 그리고는 간절하게 편지를 찾는다. 알프레도의 부친 조르조 제르몽으로부터 온 편지에는, 알프레도가 남작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두 사람이 결투 끝에 남작이 다쳤지만 회복 중이고, 알프레도는 외국으로 떠났다가 이제 모든 진실을 알게 되어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편지를 읽고 그녀는 너무 늦었다고. 희망은 사라졌다고 슬퍼한다. <지난날이여 안녕 Addio del passato>, 장밋빛 내 뺨은 어느새 창백해져버렸고 내 연약한 영혼을 지켜줬던 알프레도의 사랑은 사라져버렸네, 아! 길 잃은 이 영혼을 도우소서, 하느님. 이 여자를 용서하시고 당신께로 이끌어 주소서 노래한 후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하고는 쓰러진다.
이 때 알프레도가 도착하고 비올레타와 뜨겁게 재회한다. 그는 어떤 사람, 악마도 두 사람을 갈라놓지 못할 것이라며 함께 파리를 떠나 인생을 살자고, 비올레타가 겪은 슬픔도 이제 보상받을 것이라고 건강도 회복될 거라고 미래가 미소지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올레타 역시 들떠서 성당으로 가서 감사드리자면서 옷을 입혀달라고 한다. 나가고 싶다고 하지만 일어날 수조차 없다. 그가 돌아왔으니 다시 살고 싶다고 그가 돌아왔는데도 다시 살수없다면 세상 그 무엇도 자신을 살릴 수 없다고 한다. 하느님! 을 부르며 슬프게 끝날 수밖에 없는 사랑을 슬퍼한다.
알프레도는 희망을 가지라면서 위로하고, 그의 부친 조르조 제르몽도 찾아와 이제야 그녀의 병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면서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자책하며 후회하고, 비올레타에게 딸로서 안아주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늦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비올레타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서 죽어간다고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을 알프레도에게 주면서 진정 사랑했던 여인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소생하는 듯이, 행복한 영혼아! 하느님께로 날아가라! 이상해요! 고통스런 경련이 멎고 알 수 없는 힘으로 회복되는 것을 느껴요. 다시 태어나는 것만 같아요. 아! 기뻐라! 를 외치며 알프레도의 품에서 죽음을 맞는다.
라 트라비아타는 그 형식에 있어서 전형적인 멜로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등장인물은 단순하고 인물 사이의 갈등은 매우 통속적이다. 베르디의 음악은 즐거움과 환희로 가득하다가 애절함과 비통함으로 마음을 찢고 절망의 끝에서 다시 치유와 희망으로 회복된다.
라 트라비아타는 '오페라' 라는 음악이라는 형식 안에 온 인류의 영원 불멸한 주제인 '사랑'을 담아 끊임없이 연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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