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SBS방송
노희경 극본, 김규태 연출
누구나 상처가 있다. 그 상처에 대해 "괜찮아"라고 말해 준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바로 "사랑", "사랑을 말해 주는 사람"이라고 외친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상처가 있어도 괜찮다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고. 그거면 되었다고 말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를 다 보고 난 후 가장 인상깊게 남는 것은 등장인물이나 명대사 또는 줄거리가 아니었다. 드라마의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마치 박자를 맞추듯이 변주되는 리듬감 있는 형식이었다. 이 드라마는 상처와 트라우마, 그에 대한 치유를 얘기하는데, 그것을 이야기 하는 방식에 있어 매우 리드미컬하다. 상처를 말할 때는 한없이 슬프다. 사랑을 말할 때는 더없이 다정하다. 너무 다정해서 손과 발이 오글거릴 정도다. 마치 연주를 하듯 드라마의 분위기는 극과 극을 왔다갔다 하면서 리듬을 탄다. 각 테마별 주제곡과 몰입도 높은 배우들의 연기가 장단을 맞추듯 감칠맛난다.
30대 초반에 성공한 인기 추리소설 작가로서 라디오DJ로도 활동하는 장재열(조인성). 그는 어린시절 계부로부터 학대당한 기억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계부의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그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형은 계부의 죽음에 관하여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장재열은 어린 시절 계부의 폭력에 시달린 그 때에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존재였던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형에 대한 집착적인 애정을 지니고 있다.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하며, 그토록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하는 형을 끝까지 책임지려고 한다(자신이 작가로서 벌어들인 수입의 상당 부분을 형에게 증여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꼭 닮은 한강우(한강우는 장재열의 열혈 팬으로 등장하는데 서서히 그가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트라우마로 만들어진 장재열의 자아임이 밝혀지는 과정이 매우 스릴 있다.)를 어떻게든 지켜주려고 안간힘을 쓴다.
형 장재범은 계부를 살해한 사실로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 중이다. 형은 계부를 죽인 것이 자신이 아닌 동생 장재열임에도 어머니가 동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범인으로 증언하였다면서, 어머니와 동생 모두에 대한 원한이 있다.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있는 동안 동생은 소설가로 성공하여 행복하게 지낸다며 출소하면 동생을 죽이겠다고 노골적인 복수심을 드러낸다. 실제로도 귀휴를 나와 장재열을 공격하여 다치게 한다. 장재범은 계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동시에 장재열의 운명에 대한 위협적인 존재로서 드라마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고 긴장의 축을 담당하는 주요 인물이다. 극의 후반부, 계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드러나면서, 장재열과 어머니, 장재범과 장재열이 결국은 서로를 위하여 희생한 사실이 밝혀진다.
노희경 작가는 장재열을 통하여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가 사회제도적으로 해결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한 개인이 고스란히 겪어내야 하는 상처에 대하여 작가 자신만의 화법으로 커다란 물음표를 던진다. 조인성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간직한 가녀리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작가 장재열로 분하여 애처로운 정서를 잘 표현해 주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 이후 작품에서는 조인성 특유의 예민하면서도 여리한 감성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조인성 특유의 연기 감성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된다. 형 장재범 역을 맡은 양익준은 악인이면서도 그 악인의 내면에 갇혀 있는 원초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그런 상처투성이 장재열이 사랑에 빠졌다. 어머니 외에 처음으로 전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지해수(공효진이다^^), 그녀는 정신과의사로서, 장재열이 진행 중인 라디오프로에서 심리분석에 관한 패널로 참여하여 진행자인 장재열과 열띤 토론을 벌인다. 장재열이 우연히 그녀의 남자친구인 방송국 PD(그는 결국 지해수와 헤어지게 되는데 그것이 장재열 때문이라며 원망한다. 장재열에 대한 악감정으로 방송국PD로서 장재열 계부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밝히고자 하고, 후에 진실을 알게 된 후 장재열에게 승복하고 지해수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의 외도를 목격하게 되고 또 우연히 지해수가 살고 있는 집에 일시적으로 기거하게 되면서 두사람의 티격태격 인연은 시작된다. 지해수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다. 힘들게 공부한 만큼 환자들의 치료에 있어서도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처음엔 장재열의 심리분석에 관한 말을 비전문가로서 작가가 알면 얼마나 아느냐며 귀담아 듣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가 치료 중인 환자들을 생각나게 하고 그녀 자신의 생각에 묘한 균열을 일으킨다. 매사에 당당한 그녀지만 그녀 역시 어린시절 상처로 인하여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있다. 아버지가 쓰러진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아버지 친구와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본 이후로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이 고착되고 키스 내지 섹스와 같은 이성과의 신체접촉을 불결하고도 외설스러운 것으로 거부하게 되었다. 장재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해수 내면의 상처를 과감하게 끄집어내고 자신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오랫동안 고착되어 온 관념을 던져버리도록 유도한다. 지해수는 어머니를 증오하면서도 자신 역시 의대진학이라는 목적을 위해 어머니의 외도사실을 방조하였다는(아버지의 친구가 경제적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장재열은 지해수로 하여금 과거와 마주하게 하는 한편 어머니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두 사람의 화해를 도모한다.
공효진 특유의 솔직하고 당당하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기는 이번에도 변함이 없다.
드라마는 상처를 드러내고 또 마주하면서 결국 그것이 치유되는 과정으로 전개되는데, 장재열과 지해수 두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 동료들이 있고 바로 그들 때문에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이 즐겁고 유쾌하다. 웃음이 있다.
지해수의 선배이자 정신과의사로서 한때 지해수의 첫사랑(?)이었던 조동민(성동일), 그는 환자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환자 개개인이 그 스스로의 힘으로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도록 돕는다. 대학병원의 조직적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형화된 치료를 거부하면서 결국 퇴출되어 개인병원을 개업한다. 정기적으로 교도소 재소자들을 상대로 한 심리상담을 하는 등 의사로서의 소명을 다하고자 노력한다. 재소자 상담 과정에서 장재범의 기억 속 진실을 찾아가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후에 장재열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딸의 유학으로 기러기아빠로 지낸다. 한 번의 이혼은 있었지만 첫사랑과 재혼하여 아내를 뜨겁게(?)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이다.
조동민의 동거인 박수광(이광수), 투렛증후군 환자로서 혼자만의 힘으로 정신질환을 이겨내고자 집을 떠나 정신과의사인 조동민에게 자신을 의탁한다. 가출소녀 오소녀(이성경)를 사랑하여 그녀가 양다리를 하면서 돈을 뜯어내는 데에도 감수한다. 오소녀가 쓰레기를 줍는 아버지가 창피하다면서 함부로 대하자 이를 질책하는 등 오소녀에게 책임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결국 진심이 전해지고 오소녀와 진지한 교제를 하게 되면서 투렛증후군을 극복한다.
지해수의 선배 정신과의사 이영진(진경), 그녀는 조동민과 결혼하였다가 가정과 직업에 대한 생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하였지만 여전히 조동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의 주변을 맴돈다. 의사로서 책임감이 강하고 선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범적인 의사의 전형이다. 장재열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에 기여하면서 조동진과는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들은 모두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특유의 개성 넘치는 연기로 장면마다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드라마의 후반부는 주로 장재열의 정신분열질환이 모두에게 알려지고 이를 치료하고 극복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다. 한강우를 연기한 도경수는 실존이 아닌 정신분열로 창조된 가상의 캐릭터를 실감있게 연기한다. 아이돌그룹 EXO 출신이라니 이젠 연기돌 반열에 올라도 좋을 것 같다. 폭행현장에서 탈출한 직후의 모습이나 자신을 떠나보내려는 장재열에게 집착하는 장면에서는 광적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극의 후반, 장재열을 그토록 예뻐했던 지해수의 어머니(김미경)가 장재열의 정신분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픈 남편과 평생을 살아야 했던 본인의 경험을 딸만큼은 겪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장재열과의 교제를 극렬하게 반대하여 주된 갈등의 요인이 된다. 지해수는 어머니를 배반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미래를 유보한 채 유학을 떠난다.
장재열이 정신분열치료를 위해 입원한 이후의 과정이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결국 모든 장애를 극복한다. 마지막회 떠났던 지해수가 돌아와 장재열과 재회하고 사랑을 완성하게 되는 엔딩으로,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더없이 행복하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노희경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마이 디어 프렌즈]의 변주곡 같은 느낌이다. 마이 디어 프렌즈는 우리 주변의 비교적 평범한 노년층이 주된 인물의 중심을 이루지만, 괜찮아 사랑이야는 청년층이 주된 인물의 중심이 되고 정신의학이라는 전문분야를 배경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면이 있다. 그런데 두 작품 모두 조인성이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의 대상이 되고 장애가 있지만 결국 사랑으로 극복하는 엔딩으로 유사한 면이 있다.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에서 주로 '가족'에 대해 얘기하는데, 한편으로는 너무나 사랑하는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는 애증의 대상으로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러면서도 존재의 이유가 되는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가족 이외에 오랜기간 함께 한 친구 내지 동료들이 애증의 대상인 가족의 빈자리를 우정이라는 사랑의 또 다른 모습으로 채워주고 일상의 장애를 극복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에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마이 디어 프렌즈에서도,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도 애증의 대상으로서 가족이 있는 한편 늘 곁을 지켜주는 친구와 동료가 있다.
드라마처럼 행복한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우리 주변에도 "괜찮아, 사랑이야"라고 말해 주는 이들이 있고, 바로 그들 때문에 그래도 오늘 하루를 또 내일을 살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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