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o 172~3 - 학생들은 호머나 아이스킬로스의 책을 그리스어로 읽어도 방탕과 사치에 빠질 위험이 없다. 책에 등장하는 영웅을 어느 정도는 본받을 테고, 또 아침 시간을 그 책을 읽는 데 할애하게 되지 않겠는가. 사실 타락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영웅을 다루는 책을 이해할 수 없다. 모국어로 인쇄해 놓는다 할지라도 죽은 언어를 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다. 그러니 우리는 지혜와 용기와 관용의 마음으로 일반적인 쓰임새를 넘어서는 폭넓은 의미를 추측해 가며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열심히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
때로 사람들은 마치 고전 연구가 좀 더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에 차음 길을 내주게 될 듯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모험심이 투철한 학생은 어떤 언어로 쓰였든지, 또 얼마나 오래전에 쓰인 것인지 상관치 않고 늘 고전을 읽는다. 고전은 인류의 생각을 담은 가장 고귀한 기록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
[소리]
o 190~1 - 늘 방심하지 않는 태도를 연마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나 훈련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반드시 봐야 할 것을 늘 눈여겨보는 훈련을 하라. 제아무리 잘 선택한 역사, 철학, 시 강의도, 혹은 뛰어난 사회나 동경할 만한 삶의 방식도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단순한 독자나 학생이 되는 대신 '보는 이'가 되어야 한다. 운명을 읽고 앞에 놓인 것을 바라본 후, 미래로 걸어 들어가 보자.
... 손으로 하든 머리로 하든,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활짝 피어난 현재라는 시간을 희생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삶에 넓은 여백을 두고 싶다. 따라서 가끔은 여름 아침의 일상이 된 목욕을 하고, 햇살이 잘 드는 문간에 앉아 해 뜰 무렵부터 정오까지 몽상에 빠져 있곤 했다. 소나무와 호두나무와 옻나무 사이에서 방해하는 이 없는 고독과 정적 속에 앉아 있었다. 새들은 집 주변에서 노래 부르거나, 집 안팎을 소리 없이 날아다녔다. 그렇게 해는 서쪽 창가로 기울어 갔고, 멀리 대로를 지나는 여행자의 마차 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야 나는 시간이 한참 흘러갔음을 깨닫곤 했다. 그런 계절이면 나는 밤새 쑥숙 자라는 옥수수처럼 영글어 갔다. 그리고 그런 시간은 몸으로 하는 어떤 노동보다도 소중했다.
o 193 - 이웃 사람들의 눈에 이런 내 삶은 몹시도 게을러 보였으리라. 그러나 새와 꽃이 그들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했다면, 내 삶도 결코 부족해 보이지 않았을 터다. 인간이 자신의 내부에서 삶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는 점은 불변의 진리다. 자연의 나날은 매우 평온하여, 인간의 게으름을 꾸짖는 법이 없다. ... 인생 자체가 내게는 즐거움이었고, 인생도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멈춘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수많은 장면으로 구성되어 끝없이 이어지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지금껏 배워 왔던 마지막이자 최선의 방식으로 한결같이 삶을 살아가고 꾸려 간다면, 어찌 잠시라도 권태로울 새가 있겠는가. 타고난 능력을 충실히 따라 산다면, 우리는 매시간 새로운 전망을 보게 될 터다.
o 200~2 - 아침 열차가 지나는 모습을 나는 일출을 바라볼 때와 마찬가지의 심정으로 바라본다. 해 뜨는 시간만큼 규칙적인 것도 없으니 말이다. 기차가 보스턴으로 향하는 동안 연기의 구름은 뒤에 길게 늘어지면서 점점 더 높이 하늘로 올라가, 마치 천상의 기차처럼 잠시 태양을 가리고 멀리 있는 내 밭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 기차의 도착과 출발은 이제 마을의 하루에서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기적 소리는 정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멀리까지 들려 온다. 농부는 그 소리에 시계를 맞추게 되었으니, 잘 정비된 제도 하나가 온 나라를 관리하게 된 셈이다.
철도가 발명된 덕에 사람들의 시간관념도 다소 향상되지 않았을까? 옛날의 역마차 역에서보다 오늘날의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더 빨리 말하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기차역의 분위기에는 우리를 열광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때문에 나도 그것이 일구어 낸 여러 기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o 203~4 - 내게 상업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진취성과 용기 때문이다. 상업은 두 손을 모아 쥐고 주피터에게 기도하지 않는다. 나는 상인들이 나름의 용기와 만족을 품고 장사에 나서 스스로가 생각한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본다. 어쩌면 의식적으로 해내리라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잘 해낼지도 모른다. ... 상업은 예상과는 달리 자신감 넘치고 평온하며, 기민하고 모험적이고 지칠 줄 모른다. 또한 여타의 허황한 사업이나 감상적인 실험보다 그 방법 면에서 자연스럽기에 두드러진 성공을 거두었다. 화물열차가 덜컹거리며 옆으로 지나갈 때면, 나는 기분도 상쾌해지고 너그러워진다.
o 210~219 - 이제 기차는 지나가고, 부산하던 세상도 그와 함께 지나가 버렸다. 호수의 물고기도 더는 기차의 덜컹거림을 느끼지 않으리라.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로움이 밀려든다. 남아 있는 기나긴 오후 내내, 나의 명상은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다. 오직 멀리 떨어진 대로를 지나는 마차 한 대나 가축이 끄는 수레가 덜컹이며 지나는 희미한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
저녁나절 숲 너머 먼 지평선에서 들려오는 소의 울음소리는 감미롭고 운율적이다. 처음에 나는 그 소리가 산과 골짜기를 헤매 다니며 가끔씩 내게 세레나데를 불러 주던 어느 음유시인의 목소리가 아닌가 착각했다. ...
여름철 어느 시기쯤에는 저녁 열차가 지나간 직후인 7시 반만 되면 쏙독새가 문 앞의 나무 그루터기나 대들보에 앉아 반시간가량 저녁 기도를 읊어 댔다. 저녁마다 해가 지고 나서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거의 시계처럼 정확히 노래를 시작한다. 덕분에 나는 쏙독새의 습성을 알게 되는 매우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
다른 새들이 조용해지면 부엉이가 그 노래를 이어받아 곡을 하는 여인네처럼 부어부엉 태곳적 울음을 울어 댄다. ... "부엉 부엉 부엉 부엉" 사실 부엉이 우는 소리는 낮이든 밤이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간에 내게는 늘 즐거운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다. ...
온종일 해가 어느 야생 늪지 위를 비추고 있다. 그곳에는 가문비나무 한 그루가 이끼를 잔뜩 뒤집어쓴 채 서 있고, 그 위로는 작은 매들이 선회한다. 박새는 상록수 사이에서 지저귀고, 꿩과 토끼는 그 밑을 살금살금 움직여 다닌다. 그러나 이제 훨씬 음산하고 이곳에 잘 어울리는 날이 밝아 오면, 다른 종의 생명체가 그곳에서 자연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깨어나리라.
저녁 늦은 시간이면 멀리서 짐마차가 덜컹이며 다리를 건너는 소리가 그 어느 소리보다 멀리까지 울리는 소음처럼 들려왔다. 가끔은 먼 외양간 앞뜰에서 암소가 홀로 서글프게 울어대는 소리나 개 짖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호숫가는 온통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 천지였다. ...
내가 수탉의 울음소리를 내 개간지에서 들은 적이 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 그러나 노래하는 새를 키우듯 그 노랫소리를 들어 볼 요량으로 수평아리를 키워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나는 개나 고양이, 소, 돼지뿐 아니라, 닭도 기르지 않았다. 그러니 내 집에는 가정적인 소리가 결여됐다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듣고 있으면 위안이 되는 우유 젖는 소리도, 물레 돌아가는 소리도, 찻주전자가 노래하듯 끓는 소리도, 냄비에서 김빠지는 소리도, 그리고 아이들의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고방식이 구태의연한 사람이라면, 권태로움에 미쳐버리거나 그 전에 죽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
마당에는 큰 소리로 우는 수평아리도 꼬꼬댁거리는 암탉도 없었다. 아니, 아예 마당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울타리를 치지 않은 자연이 바로 문틀 앞까지 미쳐 있었다. 어린 숲이 창문 바로 밑에서 자라나고, 야생 옻나무와 검은딸기 넝쿨이 지하실 안으로 뻗어 나갔다. 빽빽이 자라는 튼튼한 리기다소나무가 지붕널에 닿아 삐걱거렸고, 그 뿌리는 집 아래 쪽으로 깊이 뻗어 나갔다. 내 집에는 돌풍이 분다고 날아가 버릴 석탄 통도 차양도 없었다. 대신 집 뒤의 소나무가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땔감이 되어 주었다. 폭설이 내린다고 해도 앞마당까지 이어지는 길이 막힐 일은 없었다. 아니, 아예 대문이니 문이니 하는 문명세계로 통하는 길 자체가 없지 않았는가!
[고독]
o 220 - 온몸이 하나의 감각이 되어 모든 땀구멍으로 기쁨을 들이 마시는 듯하니, 참으로 즐거운 저녁이다. 나는 자연 속에서 그 일부가 되어 묘한 자유를 느끼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날씨는 구름이 끼고 바람도 불며 서늘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셔츠만 입고 돌 많은 호숫가를 걸어 다닌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이 없음에도, 이상스레 모든 자연 현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
o 222 - 우리 주변에는 보통 너른 공간이 있다. 지평선이 팔꿈치에 닿을 만큼 가까이 있은 적도 없다. 우리는 울창한 숲이나 호수가 바로 문밖에 닿아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늘 베어 내고 전용하고 울타리를 친다. 자연에게서 빼앗아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인간이 방치해 놓은 이 인적 드문 숲속의 광활한 대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집은 가장 가까운 이웃도 1.5킬로미터 이상이나 떨어져 있고,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지 않는 한 주변 800미터 이내에서는 그 어디에 서 있든 집 한 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숲이 경계 지은 지평선을 혼자 독차지하고 산다. 한쪽으로는 철로가 호수를 감아 돌며 지나는 풍경이 멀리 보이고, 다른 쪽으로는 숲길을 따라가는 울타리의 모습도 보인다. 대개의 경우 내가 사는 곳은 대초원만큼이나 고요하다. 뉴잉글랜드임에도 아시아나 아프리카 같다. 말하자면, 나만의 해와 달과 별을 가지고 나만의 작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밤에는 집 앞을 지나거나 문을 두드리는 나그네 하나 없으니, 마치 내가 세상 최초의 인간이거나 마지막 인간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o223 - ... 그러나 때로 나는 가장 달콤하고 다정하며, 가장 순수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사귐은 자연의 대상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우쳤다. 가엾게도 인간을 혐오하는 사람이나 극도로 우울한 사람이 있으니, 그런 이들도 자연 속에서라면 얼마든지 교제 상대를 찾을 수 있다. 자연 한가운데 살아가면서 자신의 감각을 차분히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어두운 비애가 찾아올 겨를이 없다. 폭풍우도 찾아오지 않는다.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폭풍우도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연주하는 음악처럼 들릴 뿐이다.
o 224 - ...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빠져 나는 자연 속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 그리고 집 주변을 에워싼 모든 소리와 풍경 속에, 실로 달콤하고 너그러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불현듯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하는 대기처럼 무한하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친근한 감정이었다. ... 자그마한 솔잎 하나하나가 공감으로 확장되고 부풀어 올라 내게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말하는 장소에서조차 내게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확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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