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객 ],
o 238 - 나도 대부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벗과의 교제를 즐기고, 내 삶 속을 걸어 들어오는 열정적인 사람에게는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 각오도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천성이 은자는 아니지만, 볼일이 있어 술집에 간다면 그 어떤 끈질긴 단골손님보다도 더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있다. ...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정을 위한 것이며, 나머지는 사교를 위한 것이다. ...
o 245 - 사람은 어디에 살든 사람과 마주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나는 숲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내 생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방문객을 맞이했다. 내 말은 손님이 좀 찾아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숲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훨씬 호의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을 맞았다. 그러나 사소한 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훨씬 줄었다. 아마도 내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탓에 찾는 이가 줄었던 듯하다. 나는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고독한 섬 안에 깊숙이 자리 잡았고, 그 바다로 교제의 강물이 흘러들었다.
o 245~256 - 오늘 아침 내 집에 찾아온 사람은 실로 호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파플라고니아(흑해 연안의 고대 소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깊었던 민족) 사람 같은 이였다. 여기에 밝힐 수가 없어 애석할 따름이지만, 그의 이름은 그에게 참으로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시적이기도 했다. 그는 캐나다 태생의 나무꾼이자 기둥 만드는 일을 했는데, 하루에 50개의 기둥에 구멍을 팔 수 있었다. ... 나이가 스물여덟쯤 된 그는 12년 전에 캐나다 있는 부모님 집을 떠나 미국으로 왔다. 그는 언젠가 고향에 농장을 마련할 생각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외모는 무척이나 험하게 생겼고, 체격은 단단했지만 좀 굼뜬 편이었다. 그러나 태도는 점잖았다. 햇볕에 그을린 목은 굵직했고, 검은 머리는 부스스했으며, 푸른 눈은 흐릿하고 졸린 듯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반짝이며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납작한 회색 천 모자를 쓰고 우중충한 색깔의 양모처럼 보이는 외투와 소가죽 장화 차림이었다. 그는 고기를 엄청나게 먹어 댔다. ... 그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내 콩밭을 가로질러 갔으며, 여느 미국 사람들처럼 조바심을 내거나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고 몸이 상할 정도로 일을 하지도 않았다.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벌어도 개의치 않았다. ...
내가 그에게 관심을 두었던 이유는, 조용하고 고독하게 지내면서도 참으로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쾌활함이 그의 눈에서 샘처럼 흘러 넘쳤다. 그의 기쁨은 순수했다. 때로 나는 숲에서 나무를 베고 있는 그와 마주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로 나를 맞이했고, 영어를 할 줄 알면서도 캐나다식 프랑스어로 인사말을 건넸다. 내가 다가가면,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겠다는 듯, 자신이 베어 놓은 소나무 곁에 벌렁 드러누웠다. ...
내면만 살핀다면, 그는 동물적인 면이 주로 발달돼 있었다. 육체적인 지구력과 만족감 면에서는 소나무와 바위의 사촌 격이라 할 만했다. 한번은 내가 그에게 온종일 일하고 나면 밤에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천만에요. 평생 피곤이라고는 느껴 본 일이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 있는 지적인, 소위 정신적인 인간은 갓난아기의 내면에 있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잠들서 어 있었다. ... 자연은 그를 창조하면서 칠십 평생을 어린아이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강인한 육신과 만족을 그의 몫으로 떼어 주면서, 무너지지 않도록 존경과 신뢰라는 기둥으로 사방을 받쳐 주었던 것이다. ... 만약 그 무엇도 열망하지 않는 이를 겸허하다 할 수 있다면, 그는 실로 타고나기를 단순하고 겸허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어느 철학자가 그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예기치 않게도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는 대체로 무식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의 내면에서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간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그가 셰익스피어만큼이나 현명한지, 혹은 그저 무지한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지 알 수가 없다. 또는 섬세한 시인의 의식을 보이는 자인지, 그저 어리석은 자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어느 마을 사람은 그가 꼭 맞는 작은 모자를 쓰고 혼자 휘파람을 불면서 한가로이 마을을 지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분을 가장하고 돌아다니는 왕자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
그는 여러 제도를 그 어떤 철학자보다도 훌륭히 옹호할 수 있었다. 자신과 관련지어 설명함으로써, 그 제도가 널리 행해지는 진짜 이유를 제시할 뿐 아니라, 괜히 다른 이유를 찾는답시고 고민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 언젠가 여러 달 만에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여름 동안 뭐 새롭게 떠올린 생각이라도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생각이라뇨. 나처럼 일에 치어 사는 사람은, 평소 하던 생각이나마 잊어버리지 않으면 다행인걸요. 만약 함께 밭을 매던 사람이 밭매기 경주를 하자고 하면, 내 생각은 거기에 온통 매달릴 거예요. 잡초 뽑는 생각만 할 거라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 어느 겨울날 나는 그에게 늘 자신에게 만족하고 사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 그러자 그는 "만족이라!"라고 탄성을 내지르더니, "어떤 사람이 이거에 만족하면, 또 어떤 사람은 저거에 만족하는 법이죠. 뭐,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야 온종일 화로 앞에 앉아 밥만 배불리 먹어도 충분히 만족할 테니까요. 내, 참!"이라고 대답했다. ... 미흡하기는 해도, 나는 그의 내면에 확고한 독창성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그가 독자적으로 사고하며 나름의 의견을 표현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
그의 존재는 사회의 밑바닥 계층에도 얼마든지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그들은 평생 가난하고 무식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늘 독자적인 견해를 품고 살아가며 자신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잘난 척하지 않는다. 또한 겉으로는 어둡고 혼탁해 보일지라도 월든 호수만큼이나 한없이 깊은 속내를 품고 있다.
o 257 - 특히 어느 날, 남에게 해 끼칠 줄 모르고 지능도 떨어지는 한 가난한 남자가 나를 찾아와서는 나와 같은 식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털어놓은 일이 있다. 전에 나도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판에 놓인 쌀부대 위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소 떼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길을 잃지 않도록 망을 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일이 있다. 한마디로 울타리가 할 일을 대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나치게 겸손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겸손함의 경지에는 미치지도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궁극의 단순함과 솔직함으로 자신은 '지능에 결함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 신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돌봐 주고 계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내 앞에 서서 자기 말의 진실성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계속 이랬어요. 어릴 때부터 내내 머리가 나빴어요. 다른 애들과는 달랐어요. 머리가 약해요. 하늘의 뜻이래요"라고 말했다. 내게 그의 존재는 형이상학적인 수수께끼였다. 나는 이처럼 희망에 들뜬 마음으로 동료 인간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지극히 소박하고 성실하며, 진실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자신을 낮출수록 그는 더욱 숭고해 보였다. 사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것은 그의 현명한 정책의 결과였다. 이 가난하고 지능이 낮은 가엾은 이가 다져 놓은 진실과 솔직함을 기반으로 삼아 출발한다면, 우리의 교제도 현인들 간의 교류를 훨씬 능가하는 훌륭한 것이 되리라.
o 261~3 - 돈을 벌어 생계를 책임지는 데만 온통 시간을 쓰느라 안절부절못하고 속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가 신을 독차지하기라도 한 듯, 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목사들, 의사나 변호사, 그리고 내가 집을 비울 때면 몰래 들어와 찬장이며 침대를 엿보는 부산한 아낙네들(대체 oo 부인은 내 이불보가 자신의 것만큼 깨끗하지 않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젊음을 포기하고 전문직이라는 잘 닦인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결론 내린 젊은이들. 이들 모두가 나처럼 살아서는 좋은 일을 할 수 없다고 한입처럼 말하곤 했다. 이런! 그것이 문제였다는 말인가!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노인, 병자, 겁쟁이들은 병이나 갑작스런 사고, 혹은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들에게 삶이란 위험으로 가득 찬 것이다(하지만 위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데도 위험이 존재할까?). 따라서 그들은 사람이 신중하다면 의사 B가 즉시 달려올 수 있는 안전한 장소에서 절대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죽을 위험도 늘 함께하는 법, 물론 처음부터 죽은 듯이 살아간다면야 그만큼 죽을 위험도 적어지는 게 당연하겠지만, 인간은 앉아 있어도 달릴 때만큼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
나는 닭을 기르지 않기에, 닭을 노리는 매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을 노리는 인간은 좀 무섭다. 그런 자들과는 달리 반가운 방문객도 있었다. 딸기를 따러 오는 아이들, 깨끗하게 손질한 셔츠를 입고 일요일 아침 산책을 나오는 철로 인부들, 어부와 사냥꾼, 시인, 철학자, 한마디로 자유를 찾아 마을을 등지고 숲으로 들어서는 모든 순례자는 언제든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하곤 했다. ...
[ 콩밭 ]
o 267~8 - 나는 말이나 소는 물론이고, 어른이든 아이든 일꾼의 도움 없이 개량된 농기구도 이용하지 않고 일했기에, 일의 속도는 느렸지만 덕분에 내 콩들과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친밀해질 수 있었다. ...
o 272~3 - 또 가끔은 한 쌍의 솔개가 하늘을 날면서 높이 치솟았다가 하강하기도 하고, 서로 가까이 조우했다 멀어지기도 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그것은 마치 내 사상을 그대로 구현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산비둘기가 떨리는 듯 작은 날갯짓으로 전령과도 같이 바쁘게 이 숲 저 숲으로 날아다니는 모습도 참으로 아름답다. 또는 썩은 나무 그루터기 밑을 괭이로 파헤치다가 불길해 보이는 이국적 느낌의 점박이 도롱뇽이 기어 나오는 모습을 목격한 일도 있다. 왠지 이집트와 나일강이 떠오르게 했지만, 녀석도 틀림없는 우리 시대의 생물이다. 내가 괭이에 몸을 기대고 잠시 쉬고 있노라면, 바로 이런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이것이야말로 전원에서 맛볼 수 있는 결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즐거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o 275~6 - 내가 밭을 경작하며 오랫동안 콩과 맺은 교제는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다. 나는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추수하고, 도리깨질하고, 선별하고, 마지막에는 내다 팔기까지 했다(이 마지막 일이 실은 가장 어려웠다). 직접 맛을 보기도 했으니 먹는 일도 포함시켜야겠다. 이렇듯 나는 콩에 대해 속속들이 알려고 마음먹었다. ...
이것은 두루미와의 싸움이 아니라 잡초와의 긴 전쟁이었다. 잡초는 태양과 비와 이슬을 제 편으로 둔 트로이군이다. 콩은 매일 괭이로 무장하고 달려 나가는 내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
o 283 - 최소한 고대의 시와 신화는 한때 농업이 성스러운 기술이었음을 알려 준다. 그런데 요즘은 단지 대규모 농장에서 대량 작물을 수확하는 것이 농업의 목적이 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불경스러울 만치 서두르며 무분별하게 농사를 짓는다. ... 따라서 농부가 자신의 소명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표현할 기회나 농업의 신성한 기원을 떠올려 볼 기회나 농업의 신성한 기원을 떠올려 볼 기회도 없다. 농민을 유혹하는 것이라고는 상품이나 먹고 마시는 잔치뿐이다. 그러니 농부는 풍작의 여신 케레스와 지상을 다스리는 신 주피터에게가 아니라, 지옥의 신 플루토에게 제물을 바치는 셈이다.
인간은 땅을 재산으로 혹은 재산을 획득하는 수단으로만 간주한다. 이 비천한 습관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에, 그리고 우리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풍경은 훼손되고 농업은 타락하고 농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천한 삶을 보낸다. 오늘날 농부는 자연을 도둑의 눈으로만 바라본다. 카토는 농업으로 얻은 이익은 그 무엇보다도 경건하면서도 정당하다 하였고 ...
o 284~5 - 우리는 태양이 농토나 평원, 숲, 어디고 할 것 없이 고루 내리쬔다는 사실을 자칫 잊어버리기 쉽다. 세상은 그 빛을 반사하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하는데, 태양이 그 매일의 여정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장려한 풍경 속에서 농토는 아주 적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태양이 바라보는 지구는 하나의 텃밭과 마찬가지로 전체가 똑같은 농토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태양이 빛과 열기로 베푸는 은혜를 그에 합당한 믿음과 아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어찌 우리의 농사에 실패가 있을 수 있겠는가? 잡초의 씨는 작은 새의 곡식이 될 테니, 잡초가 무성해지는 것 역시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섭리와 비교해 보면 들판의 곡식이 농부의 곳간을 채울지 어떨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다람쥐가 올해는 숲속에 얼마나 많은 밤송이가 맺힐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듯이, 진정한 농부도 걱정 같은 것은 접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밭에서 생산하는 모든 작물에 대한 권리도 포기하고, 최초의 열매뿐 아니라, 최후의 열매까지도 신께 제물로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성실히 일해야 할 것이다.
[ 마을 ]
o 286 - 오전 중에 풀을 뽑거나, 혹은 독서나 집필을 마치고 나면, 나는 대개 다시 목욕을 하곤 했다. 호수의 후미진 곳을 잠시 헤엄쳐 건너며 몸에 붙은 노동의 때를 씻어 내거나, 공부가 새겨 놓은 주름살을 마지막 하나까지 펴고 나면, 오후는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매일, 또는 하루걸러 한 번씩 마을까지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
o 293 - 인간은 잠에서 깨어나든 넋을 잃은 상태에서 깨어나든 간에 정신이 들 때면 언제든 다시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위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길을 잃기 전에, 이 세상을 잃어버리기 전에, 다시금 자신을 찾기 시작해 지금 현재 어느 곳을 헤매 다니는지 깨닫고, 세상과의 관계는 얼마나 무한한지도 깨달아야 한다.
[ 호수 ]
o 301~2- 월든 호수를 에워싼 풍경은 소박하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장관이라 하기에는 미흡했고 오랫동안 자주 찾은 사람이나 호숫가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면 별로 흥미를 품을 거리도 없다. 그러나 그 깊이와 물의 맑은 정도는 상당히 뛰어나기에 구체적으로 묘사할 만한 가치가 있다. 맑고 깊은 초록의 샘이라 할만한 이 호수는 길이 800미터에 둘레는 3킬로미터가 채 안 되며, 면적은 61.5에이커다. 소나무와 떡갈나무 숲 한가운데서 영원히 솟아오르는 샘처럼 구름과 증발 외에 눈에 보이는 물의 유입구나 출구는 전혀 없다. 호수를 둘러싼 언덕은 물가에서 12미터 내지 25미터 정도의 높이로 불쑥 솟아올라 있으나, 400~500미터쯤 떨어져 있는 남동쪽과 동쪽의 언덕은 각각 그 높이가 30미터와 45미터 정도에 이른다. 그 일대로는 숲이 에워싸고 있다.
o 303 - 월든 호수는 같은 각도에서 바라봐도 어느 순간에는 파랗다가 다음 순간에는 초록으로 변한다. 어쩌면 하늘과 땅의 중간에 놓여 있는 까닭에 그 둘의 색을 다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o 308 -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던 그 봄날 아침에도 월든 호는 이미 존재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도 이미 안개와 남풍을 동반하는 부드러운 봄비를 맞으며 해빙했을 테고, 수많은 오리나 기러기 무리도 여전히 그 맑은 호수에 만족하며 수면을 뒤덮고 있었을 터다. 아담과 이브의 몰락 소식은 전혀 듣지도 못한 채.
o 318 - 언덕으로 에워싸인 작은 호수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숲만큼 아름답고 근사한 숲은 없다. 이때 숲의 모습을 반사하는 물은 자연의 화폭을 메우는 최고의 전경이 되어 줄 뿐 아니라, 들쑥날쑥한 호반과 함께 가장 자연스럽고 그럴듯한 경계까지 만들어 낸다. ...
호수는 가장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한 풍경의 특징이다. 그것은 대지의 눈이다. 호수를 들여다보는 이는 자기 본성의 깊이를 측정하게 되리라. ...
o 327~8 - 지금보다 젊었을 때, 나는 여름날 오후가 되면 호수 한가운데로 배를 저어 나가서 산들바람에 배를 맡기고 배 바닥에 길게 드러누워 몽상에 잠긴 채 몇 시간이고 떠나니곤 했다. 그러다가 배가 모래밭에 닿으면 깨어나 내 운명이 어느 호반으로 날 이끌어 왔는지 보려고 몸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그런 여유로운 삶이 가장 매혹적이고 생산적인 일인 듯 느껴졌다. 따라서 하루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그런 식으로 보내고 싶어 곧잘 오전 시간에 도망쳐 나오고 했다. 나는 부자였다. 돈은 없었지만, 햇살 좋은 시간과 여름날이야 얼마든지 있었기에 원하는 대로 흥청망청 쓸 수 있었다. ...
o 335 - 나는 그의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 온갖 것에 값을 매겨 놓은 그의 농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돈만 준다면 풍경이든 신이든 모두 시장에 내다 팔 인간이다. 말하자면, 시장에서 자신의 신을 찾는 인간이다. 그의 농장에는 공짜란 없다. 밭에는 곡물이 영글지 않고, 목초지에는 꽃이 피지 않으며, 나무에는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그가 재배하는 것은 오직 돈뿐이다. 그는 자신이 키우는 과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고, 그 과일은 돈과 교환되기 전까지는 익은 것이 아니다.
내게 진정한 풍요를 즐길 수 있는 가난을 달라. 내게 있어 농부란 가난한 만큼 존중할 만하고 흥미로운 존재다.
o 341 - 이들 호수는 값을 따지기에는 너무나도 순수하다. 불순한 것이란 전혀 섞여 있지 않다. 우리의 삶에 비해 얼마나 더 아름다우며, 우리의 성정보다 또 얼마나 더 투명한가! 우리는 이들의 천박함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 ... 자연은 인간이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늘 홀로 그 빛을 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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