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글, 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 Walden 3 :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 더 클래식 출판

조앤디디온 2019. 2. 13. 04:15






o 149 * 150~1 - ... 아주 작은 것이라도 샘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대륙이 섬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집 앞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훨씬 제한돼 있었음에도, 나는 혼잡하거나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상상력을 북돋우기에 충분한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 사람은 누구나 외딴 천계의 구석진 모퉁이 어딘가, 카시오페이아의 의자 별자리 너머에는 소음과 소란에서 벗어난 드물고도 즐거운 장소가 있으리라고 상상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내 집이야 말로 천계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늘 새롭고 더러워지지 않은 장소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o 153 - ... 만약 우리가 하인이 흔들어 깨워야 일어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깨어난다면, 또는 공장의 종소리가 아닌 물결치듯 전해 오는 천상의 음악과 대기를 가득 메운 향기를 동반한 새롭게 얻은 힘과 안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열망에 의해 깨어난다면, 그날 우리의 삶은 전날보다 훨씬 고귀해진다. 그럼으로써 어둠도 그 열매를 맺고, 빛만큼이나 가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게 된다.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는 어제 내가 더럽히지 않은 더 이르고 더 신성한 여명의 시간이 있다.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이는, 삶에 절망하여 어두운 내리막길로 걸어가는 사람이다. 감각적인 삶을 일부나마 중단하면 영혼뿐 아니라 신체 기관까지 매일 활력을 되찾게 되어, 그의 뛰어난 능력은 다시 한번 숭고한 삶을 살아가려 애쓰기 시작한다.


o 155~6 - 우리는 다시 깨어나서 그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더라도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새벽을 향한 끊임없는 염원이 있다면 물리적인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그리할 수 있다.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삶을 향상시키려는 인간의 확실한 의지보다 더 인간을 고무시키는 것은 세상에 없다. ... 인간은 누구나 자기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가장 숭고하고 중대한 순간에 관조해 볼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 갈 책임이 있다. ...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숲으로 들어갔다. 필수적인 요건만 충족한 채 살아도 삶이 가르쳐 주는 진리를 배울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또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되어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었다. 삶이란 소중한 것이기에, 삶이 아니라면 살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체념한 채 살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깊이 있게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은 모두 파괴해 버리고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가길 바란다.

낫을 크게 휘둘러서 풀을 바싹 베어 내어 삶을 구석으로 몰아가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압축해 버린 다음, 삶이 천박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 천박함을 전부 속속들이 알아내어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반대로 삶이 숭고한 것이라면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아내어 다음 번 여정에서 그 참모습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보기에 인간은 삶이 악마의 것인지 신의 것인지 관해 이상하리만치 확신을 못한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지상에 살아가는 주된 목적이 '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신을 영원히 찬미하는 것'이라고 '다소 급하게' 결론을 내린다. ...


o 157 - ...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부디 바라건대, 할 일을 백 가지 천 가지로 늘리지 말고, 두세 개로 줄이자. 백만 대신에 여섯까지만 세고, 계산은 엄지손톱 위에 적어 두자. ... 간소하게, 또 간소하게 살라. 하루 세끼 대신 필요할 때만 한 끼를 먹자. 백 가지 요리는 다섯 가지로 줄이고, 다른 것도 그 비율로 줄이자. ...


o 161 - ... 나는 우체국 없이도 사는 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사실 우체국을 통해 소통해야 할 중요한 일도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몇 년 전에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만, 평생 우표 값을 하는 편지라고는 한두 통밖에 받아 보지 못했다. 1페니 우편 제도는 흔히들 1페니를 줄 테니 당신의 생각을 말해 달라고 가볍게 던지던 농담이, 상대의 생각을 묻기 위해 정말로 1페니를 지불하는 하나의 제도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신문에서도 의미 있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전혀 없다. 만약 누군가 강도를 만나거나, 살해되거나, 사고로 죽거나, 집이 불타고, 배 한 척이 난파당하거나, 증기선이 폭발하거나, 서부 철도 노선에서 소 한 마리가 기차에 치이거나, 미친개 한 마리가 사살되거나, 겨울에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는 등이 신문에서 읽어야 할 내용이라면, 신문은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다. 한 번이면 족하다. 원칙을 알고 있다면, 무엇하러 수많은 사례와 그 적용에 신경을 쓰겠는가? 철학자에게 '뉴스'란 나이든 부인들이 차를 마시며 둘러 앉아 이리저리 끼워 맞추거나 읽는, 소위 말하는 한담에 지나지 않는다.


o 164 - 오늘날에는 진실이 거짓이라 여겨지는 반면, 사기와 기만은 가장 믿을 만한 진실로 존중받는다. 인간이 지속적으로 진실만을 주목하고 기만당하지 않으려 애쓴다면, 삶은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해 봤을 때, 동화나《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훨씬 흥겨운 것으로 변하게 될 터다. 우리가 필연적이고 반드시 존재할 권리가 있는 것만을 존중한다면, 음악과 시가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질 것이다. 또한 서두르지 않고 현명하게 처신할 때, 비로소 위대하고 가치 있는 것만이 영구히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사소한 두려움이나 쾌락은 실재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들을 때마다 신이 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o 166~7 - 우주는 우리가 품은 생각에 한결같이 고분고분 대답해 준다. 우리가 빠르게 가든 느리게 가든 길은 늘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삶을 구상하며 앞으로 나가 보자. 시인과 예술가도 늘 아름답고 고상한 구상을 품으며 앞으로 나아갔고, 후손 가운데 누군가 그것을 완성시켜 왔던 것이다.

부디 하루라도 자연처럼 신중하게 삶을 살아보자... 이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상을 온통 뒤덮고 있는 충적지, 즉 견해와 편견, 전통과 망상과 겉모습이라는 진창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더듬어 보자. 파리와 런던, 보스턴과 콩고드를 지나고, 시와 철학과 종교도 지나면 단단한 바닥과

바위가 제자리에 놓은 곳에 이를 것이다. 그곳이 바로 '실재'이고, "맞아, 여기가 확실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