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방 ]
o 405~6 - 10월이면 나는 강가 목초지로 포도를 따러 가서 한 아름씩 안고 돌아왔다. 단순히 먹을거리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그 아름다운 색과 향이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덩굴월귤도 열려 있었지만, 나는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따지는 않았다. 밀랍으로 만든 작은 보석이자 들풀 위의 펜던트처럼 보이는, 그 진주처럼 영롱하고 붉은 열매를 농부들은 흉측하게 생긴 갈퀴를 써서 긁어모았고 매끄럽던 풀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곤 한다. 그러고는 되는 대로 부셀이나 달러 단위로 저울에 달아 초원에서 거둔 전리품이라며 보스턴이나 뉴욕에 팔아 버린다. 월귤은 다 으깨진 채로 그곳에 사는 자연 애호가들의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도살자들도 대초원의 풀밭에서 들소의 혀를 긁어모으느라 초목이 찢기고 꺾이는 것쯤은 안중에도 없다 하지 않는가.
매자나무의 반짝이는 열매도 단지 내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나 땅 주인과 나그네들이 못 보고 지나친 야생 사과는 뭉근한 불에 삶아 먹으려고 조금 가지고 왔다. ...
때로 나는 밤나무에 올라가 나무를 흔들기도 했다. 내 오두막 뒤에도 밤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특히 한 그루는 오두막을 뒤덮을 만큼 무성해 밤꽃이 필 때면, 주변을 그윽한 향기로 감싸는 꽃다발로 변하곤 했다. ...
o 408 - 9월 1일쯤 되자, 호수 맞은편에 서 있는 두세 그루의 작은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아래는 사시나무 세 그루의 하얀 가지가 물가까지 뻗어 나와 있었다. 아, 이들의 색깔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그로부터 한 주 한 주 지나는 동안, 나무들은 서서히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호수의 거울처럼 매끄러운 표면에 비치는 그 자신의 모습을 한껏 뽐냈다. 매일 아침, 이 화랑의 주인은 벽에 걸린 오래된 그림을 떼어 내고 훨씬 선명하고 조화로운 색채를 담은 새로운 그림을 내다 걸었다.
o 412~3 - 내가 은신처로써뿐 아니라, 추위를 피하는 용도로도 집을 이용하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소 나는 내 집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벽난로 바닥에서 장작을 약간 띄어 두고자 두 개의 낡은 장작 받침쇠를 구해 두었다. 내가 만든 굴뚝 안쪽에 검댕이 붙어 쌓여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여간 즐겁지 않았다. 나는 평소보다 더한 권리와 만족감을 느끼며 신이 나서 불쏘시개로 불을 쑤석였다.
내 오두막은 자그마해서 집 안에서 울리는 소리의 반향을 즐길 수는 없었다. 허나 방이 하나인 데다 이웃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훨씬 커 보였다. 집 한 채가 갖추어야 할 모든 매력이 방 하나에 모두 집약돼 있던 셈이다. 내 집은 부엌이자 방이자 거실이며, 응접실이기도 했다. 나는 그 집에 살며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또 집주인이나 하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즐거움을 만끽했다. ...
o 419~420 - 그동안 호수의 가장 그늘지고 얕은 만에는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이제 며칠, 혹은 몇 주만 있으면 호수 전체가 빙판이 될 터였다. 첫 얼음은 매우 단단하고 투명했는데, 얕은 곳에서는 호수 바닥을 살펴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고 완벽했다. ... 그 시기쯤이면 물도 늘 잔잔하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얼음 그 자체가 가장 흥미로운 관찰의 대상인데, 그것을 연구하려면 일찍 기회를 잡아야 한다. 물이 얼어붙은 직후 이른 아침에 얼음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얼음 속에 갇힌 듯 보이던 대부분의 기포가 실은 그 아래 있을 뿐 아니라, 호수 바닥에서 계속 더 많은 기포가 올라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시기에는 얼음이 비교적 단단하고 빛을 차단하기에 그것을 통해 물 밑을 볼 수 있다. ...
나는 때로 얼음이 얼마나 단단히 얼었는지 보려고 그 위에 돌멩이를 던져 보곤 했는데, 얼음을 뚫고 들어간 돌은 공기도 함께 끌고 들어갔기에 얼음 아래쪽에 크고 선명한 하얀색 거품을 형성해 놓곤 했다. ...
o 422~3 - 마침내 진짜 겨울이 찾아왔다. 내가 막 회반죽 칠을 마친 직후였다. 바람도 마치 그때까지는 허락이 없어 불지 못했다는 듯. 보란 듯이 집 주변에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밤마다 기러기 떼가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요란한 울음을 울어 대며 날갯짓 소리와 함께 어둠속에서 날아왔다. 땅에 눈이 수북이 쌓인 뒤에도 찾아와서는 일부는 훨든 호수에 내려앉고, 또 일부는 숲 위로 낮게 날아 페어헤이븐 쪽으로, 혹은 멕시코를 향해 날아갔다. 몇 번인가 내가 마을에 갔다가 밤 10시나 11시쯤 돌아왔을 때도, 오두막 뒤편 작은 연못가 숲속에서 먹이를 찾으러 나온 기러기 떼의 소리, 오리 떼의 낙엽 밟는 소리나, 서둘러 날아 오르라고 재촉하는 우두머리의 꽥꽥 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1845년 12월 22일 밤, 월든 호수는 처음으로 전체가 꽁꽁 얼었다. 플린트 호수와 그 외의 몇몇 얕은 호수 그리고 콩코드강은 그보다 열흘 정도 일찍, 혹은 더 이른 시기에 얼어 있었다. 1846년에는 12월 16일, 1849년에는 12월 31일경, 1850년에는 12월 27일쯤, 1852년에는 1월 5일, 1853년에는 12월 31일에 월든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눈은 11월 25일부터 이미 수북이 쌓여, 주변을 겨울 풍경으로 바꾸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내 자신의 껍데기 속으로 파고들어 집 안에뿐 아니라 가슴속에도 활활 타오르는 불을 지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이제 문밖에서의 활동은 숲에서 죽은 나뭇가지를 모아 손에 들거나 어깨에 짊어지고 오거나, 죽은 소나무를 양쪽 겨드랑이에 하나씩 끼고 헛간까지 질질 끌고 가는 일이 주를 이루었다. 이미 제 몫을 다한 숲의 낡은 울타리를 발견하는 일은 횡재는 다름없었다. 더는 '경계의 신' 테르미누스를 모시지 못하는 그 울타리를, 나는 '불의 신' 불카누스에게 가져다 바쳤다. 눈밭에서 사냥해 온, 아니, 훔쳐 온 땔감으로 조리한 저녁을 먹는 일은 그 얼마나 흥미진진하겠는가! 그의 빵과 고기는 달콤하리라.
o 430~1 - 친구들 중에는 내가 일부러 얼어 죽으려고 산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하는 이가 있다. 동물들은 단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에 침상을 마련하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것을 데운다. 한데 인간은 불을 발견함으로써 체온을 빼앗기는 대신 너른 집 안에 공기를 가두고 그곳을 데워 자신의 침대로 사용한다. 또한 그 안에서 인간은 성가신 옷을 벗어 버린 채 돌아다니고, 한겨울에도 여름 같은 기온을 유지하며 지낸다. 창문 덕에 빛까지 들어오고, 등불 덕에 낮을 연장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본능을 한두 발 앞서 가서, 예술에 헌신한 시간을 마련한다.
예상치 못한 추위에 장시간 노출되면 내 온몸은 추위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가면 곧 회복이 되어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호사스러운 집에 사는 사람도 이런 점에 있어서는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니 우리도 인류가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 멸망하게 될지에 대해 추측하느라 골치 아파할 필요도 없다. 북쪽에서 조금만 더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면 언제든 인간의 목숨줄은 쉽게 끊어져 버릴 테니 말이다. 우리는 과거 끔찍이도 추웠던 금요일이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날 등에 관해 종종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날보다 약간만 더 춥거나 눈이 조금만 더 내려도 이 땅에서 인간의 삶은 종지부를 찍게 될지도 모른다.
o 432 - 이듬해 겨울에는 장작을 아끼려고 작은 조리용 난로를 사용했다. 숲이 다 내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은 벽난로만큼 불이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경우 요리가 더는 시적인 활동이 되지 않았다. 그저 화학적인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요즘과 같은 난로의 시대에는 인디언의 방식을 따라 재 속에 감자를 묻어 구워 먹던 일도 곧 잊히게 될 것이다. 난로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기도 하거니와 집 안에 냄새도 남긴다. 그러면서도 불길은 눈앞에서 감추어 버리니, 나는 마치 친한 벗을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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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446~7 - 땅에 묻힌 지하 저장고의 돌덩이와 양지바른 초지에서 자라는 딸기, 라즈베리, 나무딸기, 개암나무 관목, 옻나무 등과 함께 지면에 움푹 파인 자국만이 이곳에 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었다. 굴뚝이 있던 자리는 리기다소나무인지 옹이 진 떡갈나무인지 구분이 안 가는 나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검은 자작나무는 문 앞 섬돌의 위치로 짐작되는 부분에서 바람에 흔들렸다.
가끔은 우물의 흔적이 눈에 띄기도 했는데, 한때는 샘이 흘러나오던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말라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풀만 무성했다. 어쩌면 마지막 거주자가 떠나면서 훗날 다시 찾아낼 작정으로 평평한 돌을 덮어 잔디 속 깊숙이 묻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
이 버려진 여우 굴과도 같은 지하 저장고의 흔적이 한때 부대끼며 살아갔던 인간이 남겨 놓은 유일한 흔적이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어떤 형식, 어떤 언어로든 '운명과 자유의사와 절대예지'에 대해 토론했으리라. ...
o 448 - 문짝과 상인방과 문턱이 없어져 버린 지 한 세대가 지났음에도, 라일락은 여전히 기운차게 자라 봄마다 그 향기로운 꽃봉오리를 터뜨려서 생각에 잠겨 지나는 나그네의 손이 절로 꽃을 꺾어 들게 만든다. ...
o 449 - 내 집이 서 있는 자리에 과거 어느 시점이라도 다른 사람의 집이 세워졌던 일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고대의 도시가 있던 자리에 다시 터전을 잡은 도시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그런 도시의 건축자재는 폐허일 테고, 텃밭은 묘지일 테니 말이다. 그곳의 토양은 뿌옇게 탈색되어 저주받을 테지만, 그러한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지구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며, 나는 숲에 다시 사람이 살게 했고, 스스로를 달래 잠들도록 했다.
o 450~1 - 눈이 깊이 쌓이면, 내가 큰길에서 오두막까지 들어가는 데 이용하곤 했던 400미터 정도 되는 오솔길에는 내 발자국이 넓은 간격을 두고 점점이 찍혀 구불구불한 선을 이루곤 했다. 한 주 정도 날씨가 좋을 때면, 나는 일부러 이미 패여 있는 내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며 길을 오갔다. 같은 걸음 수와 보폭으로, 컴퍼스로 잰 듯이 정확하게 걸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간혹 이런 식의 단조로운 행동을 하도록 우리를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그 발자국 속에는 푸른 하늘이 가득 담기곤 했다.
그러나 어떤 치명적인 날씨도 내 산책, 혹은 외출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오랜 친구인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소나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깊은 눈발을 헤치고 12 내지 16킬로미터의 거리도 마다치 않고 걸어가곤 했다. 이런 날이면 얼음과 눈의 무게 때문에 나뭇가지는 척척 늘어지고, 나무 꼭대기는 뾰족해져서 소나무가 전나무처럼 보였다. 눈이 거의 60센티미터 깊이는 될 법하게 쌓인 높은 언덕 꼭대기를 힘겹게 오를 때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머리 위에 쌓여 가는 눈보라를 털어내야 했다. 손과 무릎으로 거의 기다시피 엉금엉금 오르다가 눈 속에 나뒹구는 일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사냥꾼도 월동 장소에 들어 나다니지 않았다.
o 454~5 - 깊은 눈발과 험악한 눈보라를 헤치고 가장 먼 곳에서 내 집을 찾아왔던 사람은 어느 시인이었다. 그날은 농부, 사냥꾼, 군인, 기자, 심지어는 철학자도 겁을 집어먹을 만한 날씨였다. 하지만 그 무엇도 시인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순수한 사랑의 힘으로만 움직여 다녔기 때문이다. 그의 오고 감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시인의 소명이 그를 아무 때고 밖으로 불러냈고, 의사들이 잠을 자는 시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o 455~7 - 호숫가에서 보낸 마지막 겨울 동안 또 한 사람의 반가운 방문객이 찾아왔던 사실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눈과 비와 어둠을 무릅쓰고 마을을 지나 숲 사이로 내 등불이 보일 때까지 걸어와 기나긴 겨울 저녁을 나와 함께 여러 날 동안 보내곤 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철학자 중의 하나이자, 코네티컷 주가 세상에 선물한 사람이었다. ...
내가 아는 한,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정신이 온전하고 변덕도 없는 사람이다. 어제도 그리했고, 내일 또한 그리할 터다. 언젠가 그와 함께 느긋이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나는 세상이 우리 뒤로 완전히 밀려나 버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어떠한 제도에도 서약하지 않은 자유인, 즉 '인제누스'인 까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