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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2부 영혼과 육체 [ 6 ~ 10 ]

조앤디디온 2019. 6. 9. 15:51


[ 6 ]

o 73 - 물론 테레자는 어머니가 남자 중 가장 남성적인 남자에게 조심하라고 속삭였던 밤의 일화를 몰랐다. 그녀가 느끼는 죄의식은 원죄와 마찬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속죄하기 위해 모든 일을 했다. ... 그녀는 신분상승을 원했지만 이 조그만 마을에서 어디로 상승한단 말인가? 빨래를 하면서도 욕조 곁에 책을 두었다. 그녀는 책장을 넘겼고, 책이 물방울에 젖었다.

o 73, 4 - 집에서는 수줍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속옷 차림으로, 때로는 브래지어를 하지 안은 채로, 때로는 심지어 여름에는 심지어 알몸으로 집 안을 돌아다녔다. ...

(... 어머니에게 있어서 딸이 해방을 원하고 감히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 문을 잠그고 목욕할 권리 같은 것 - 테레자에 대한 남편의 은근한 성적 집적거림보다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어느 겨울날 어머니는 불을 환히 켜 놓은 채 알몸으로 방안을 돌아다녔다. 테레자는 건너편 건물에서 누가 볼까 봐 얼른 달려가 커튼을 내렸다. 다음 날 어머니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 어머니는 대뜸 테레자가 얼마나 수줍음이 많은지 늘어놓았다. 그녀가 웃자 다른 여자들도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테레자는 인간의 몸이 오줌 싸고 방귀 뀐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요." 테레자가 얼굴을 붉혔지만 어머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게 뭐가 나빠?" 그러더니 자신의 물음에 자기가 답하려는 듯 곧바로 요란한 방귀를 뀌었다. 모든 여자가 웃었다.


[ 7 ]

o 75 - 어머니는 요란하게 코를 풀고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구석구석 털어놓고 틀니를 꺼내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능숙하게 혀끝으로 틀니를 빼내고 활짝 웃으며 위쪽 잇몸이 아래쪽 이에 닿게 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 사람들은 소름이 끼쳤다.

그런 모든 행동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내팽개치려는 유일하고 격렬한 몸짓이었다. 아홉 구혼자가 그녀를 둘러싸고 무릎을 꿇던 시절에 어머니는 맨살이 드러날까 조바심을 내던 여자였다. 그녀는 수줍음을 자기 육체의 가치를 재는 척도로 삼았다. 그녀는 한때 그녀가 과대평가했던 젊음과 아름다움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지나간 삶과 엄숙하게 결별하고자 철저하게 뻔뻔해졌다.

내가 보기에 테레자는 아름다운 여인의 삶을 멀리 내팽개쳤던 어머니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 ... 자기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어머니의 행동, 그것은 그녀, 바로 테레자 자신이었다.)


[ 8 ]  → 테레자가 토마스를 만났을 때

o 77 - ... 그녀는 젊음과 아름다움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뻔뻔스러운 세계, 서로 비슷비슷한 육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갇혀 있는 거대한 집단 수용소 같은 뻔뻔스러운 세계에 딸도 자신과 함께 남길 고집했다.

이제 우리는 오랫동안 거듭 거울을 보는 그녀의 행동, 테레자의 은밀한 나쁜 습관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어머니와의 싸움이었다. ... 선박의 창자에서 빠져나온 뱃사람의 영혼을 자기 얼굴의 표면에서 보고자 하는 욕망인 것이다. ... 슬픔과 분노에 찬 영혼이 테레자의 내장 깊숙이 숨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o 77, 8 - 그녀가 토마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상태였다. 그녀는 술집에서 주정뱅이들 사이를 돌아다녔고 쟁반 위에 올려놓은 맥주잔의 무게로 허리가 휘었으며 영혼은 위장, 혹은 췌장 깊숙이 감춰져 있었다. 그 순간 그녀를 부르는 토마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중요했다. 그 목소리는 그녀의 어머니를 모르고, 매일 음탕하고 끈적끈적한 말을 건네는 술주정뱅이들도 모르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다른 뭔가가 있다. 테이블 위에 책이 한 권 펼쳐져 있었다. ... 테레자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그녀를 둘어싼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뿐이었다. 특히 소설들. 그녀는 필딩에서 토마스 만까지 무더기로 소설을 읽었다. ... 그녀는 겨드랑이에 책을 끼고 거리를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


o 79 - 아무튼 방금 그녀를 불렀던 남자는 낯설고 동시에 은밀한 동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중한 말투로 말했고, 테레자는 자신의 영혼이 그 남자에게 모습을 드러내려고 그녀의 모든 정맥, 모세혈관, 모공을 통해 표면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 9 ]  → 테레자와 토마스의 만남, 우연과 사랑

o 80 - 그런데 어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얽혀 있다면 그 사건에는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o 80, 1 - 그 술집에 토마시가 있었다는 것은 테레자에게 있어 절대적 우연의 발현이다. 그는 책을 펴 놓고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눈을 들어 테레자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코냑 한 잔!"

그 순간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테레자는 카운터로 코냑을 가지러 가면서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베토벤의 음악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프라하의 4중주단이 이 조그만 마을에 순회공연을 온 후부터 그 곡을 알았다. 테레자는 (우리가 알듯 그녀는 '신분 상승'을 갈구했다.) 음악회에 갔었다. 공연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약사와 그 부인, 그리고 그녀뿐이었다. ... 친절하게도 연주가들은 공연을 취소하지 않고 그들만을 위해 저녁 내내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 가운데 세 곡을 연주했다.

... 그리고 그녀에게 베토벤은 그녀가 희구하던 세계의 이미지, '저쪽' 세계의 이미지가 되었다. 지금 카운터에서 코냑을 들고 토마시에게 다가가는 그녀는 이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호감이 가는 이 낯선 남자에게 코냑을 가져다 주려는 순간 베토벤의 음악이 들리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o 81 -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인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 10 ]

o 82, 3 - 그는 계산을 하기 위해 테레자를 불렀다. ...

"당신은 6호실에 머물고 나는 6시에 근무가 끝나거든요."

"이상한 일이군요, 6호실에 계시다니."

"뭐가 이상하지요?"

부모가 이혼하기 전 그녀가 머물던 프라하의 건물이 6번지였던 것이 그녀는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엉뚱한 말을 했다. (우리는 그녀의 잔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당신은 6호실에 머물고 나는 6시에 근무가 끝나거든요."

"그리고 나는 7시에 기차를 타지요." 낯선 이는 대답했다.

그녀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명을 해 달라고 내밀었던 계산서를 프런트로 가져갔다. ... 그가 그녀의 신중한 메시지를 이해한 것일까? 레스토랑을 나서면서 그녀는 초조함을 느꼈다.

거너편, 더럽고 조그만 마을 한가운데에 그녀에겐 언제나 아름다움의 작은 섬이었던 쓸쓸하고 한적한 광장이 있었다. 포플러나무 네 그루, 잔디밭의 벤치, 수양버들, 개나리가 있었다.

그는 술집 입구를 볼 수 있는 노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전날 그녀가 무릎에 책을 얹고 앉아 있던 바로 그 벤치였다! 그 순간 (우연의 새들이 그녀의 어깨 위에 모여들었다.) 그녀는 이 낯선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올 미래의 운명임을 알아챘다. 그는 그녀를 불러 옆자리에 앉으라고 청했다.(테레자는 영혼의 승무원이 육체의 갑판 위로 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 그녀는 그를 역까지 배웅했고, 그는 헤어지려는 순간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혹시 우연히 프라하에 들르시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