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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2부 영혼과 육체 [ 1 ~ 5 ]

조앤디디온 2019. 6. 8. 20:42



[ 1 ]

o 63 - 작가가 자신의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독자로 하여금 믿게 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의 몸이 아니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몇몇 문장, 혹은 핵심 상황에서 태어난 것이다. 토마시는 'einmal ist keinmal.'이라는 문장에서 태어났다. 테레자는 배 속이 편치 않을 때 나는 꾸르륵 소리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처음 토마시의 아파트 문턱을 넘었을 때 그녀의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 토마시와 마주 선 그 순간 자기 배가 발언권을 행사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황당함이란! 그녀는 거의 울음보가 터지려 했다. 다행히도 십 초 후 토마시가 그녀를 껴안아 줬고, 그녀는 배의 목소리를 잊을 수 있었다.


[ 2 ]

o 64 - 따라서 테레자는 인간의 근본적 체험, 즉 영혼과 육체 간의 화해 불가능한 이원성이 급작스럽게 드러난 상황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 육체는 껍데기고, 그 안에서 뭔가가 보고, 듣고, 두려워하고, 생각하고, 놀라는 것이다. 이 무엇, 남아 있는 잔금, 육체로부터 추론된 것, 이것이 영혼이다.

o 65 - 인간은 신체의 모든 부분에 이름을 붙이고 난 후부터 육체에 덜 불안해했다. 또한 이제는 영혼이란 뇌의 피질부 활동에 불과하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영혼과 육체의 이원성은 과학 전문용어에 가렸고 오늘날에는 그저 싱거운 웃음을 자아내는,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에 불과하다.

그러나 누군가를 미친 듯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창자가 내는 꾸르륵 소리를 한번 듣기만 한다면,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 과학 시대의 서정적 환상은 단번에 깨지고 말 것이다.


[ 3 ]

o 66 - 그녀는 육체를 통해 자기를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자주 거울을 보았다. 그녀는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들키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거울을 보는 그녀의 시선은 은밀한 죄악의 흔적을 띠었다.

그녀를 거울로 이끌었던 것은 허영심이 아니라 거울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는 경이감이었다. 그녀는 눈 앞에 있는 것이 육체적 메커니즘의 계기판이라는 것을 잊었다.

o 67, 8 - 그녀는 오랫동안 거울을 보았고, 가끔은 자기 얼굴에서 어머니의 윤곽을 보는 것을 거북해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고집스레 거울을 모며 어머니의 윤곽에서 벗어나려 했고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얼굴에 오직 자기 자신의 것만 남기려고 애썼다. 그것에 도달하면 도취의 순간이 왔다. 그때 그녀의 영혼은 선실에서 기어 나와 갑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는 뱃사람처럼 육체의 표면으로 솟아올랐다.


[ 4 ]  → 테레자의 어머니

o 68 - 나는 가끔 그녀의 생김새가 어머니와 닮았을 뿐 아니라 그녀의 삶도 어머니 삶의 연장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

아마도 프라하의 한 장사꾼이 자기 딸, 즉 테레자의 엄마 앞에서 그녀가 아름답다고 처음으로 찬사를 늘어놓던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그때 테레자의 어머니는 서너 살쯤 되었을 테고, 할아버지는 라파엘로가 그린 마리아와 그녀가 닮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 두었고 훗날 중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은 듣지 않고 자기가 어떤 그림과 닮았을까 궁금해했다.

o 69 - ... 그녀는 공주처럼 한 가운데 앉아 누구를 고를 것인가 고민했다. 첫 번째는 가장 미남이었고, 두 번째는 가장 똑똑했고, 세 번째는 가장 부자였으며, 네 번째는 가장 운동을 잘했고, 다섯 번째는 가장 좋은 가문 출신이었고, 여섯 번째는 시를 읊었고, 일곱 번째는 전 세계를 일주했고, 여덟 번째는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아홉 번째는 가장 남성적이었다. 그런데 한결같이 같은 자세로 무릎을 꿇었고, 모두 똑같이 무릎에 물집이 생겼다.

어머니는 결국 아홉 번째 남자를 골랐는데, 그가 가장 남성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랑을 나누는 동안 어머니가 "조심해서 해! 조심해야만 해!"라고 속삭였지만, 그 남자는 일부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 그렇게 해서 테레자가 태어났다. 도처에서 수많은 가족이 몰려와 요람을 들여다보며 아기를 얼렀다. 테레자의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침묵했다. 다른 여덟 구혼자에 대해 생각했고 그들 모두 아홉 번째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 어느 날 그녀는 눈가 주름을 발견하고 자신의 결혼은 엉터리였다고 중얼거렸다. ... 그녀는 사기 몇 건과 이혼 전력이 두 번 있는, 전혀 남성적이지 못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녀는 무릎이 물집투성이가 된 애인들을 증오했다. 그녀는 사기꾼에게 무릎을 꿇었고 남편과 테레자를 버리고 떠났다.

남자들 중에서 가장 남성적인 남자는 남자들 중에서 가장 슬픈 남자가 되었다. ...


o 70 - 얼마 후 남자 중에서 가장 슬픈 남자는 감옥에서 죽었다. 어머니는 테레자를 데리고 사기꾼과 함께 산자락에 있는 조그만 도시에 정착했다. ... 어머니는 아이 셋을 더 가졌다. 그리고 어느 날 여전히 거울을 보다가 자신이 늙고 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5 ]

o 71 -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잘못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았다. 모든 사람이 유죄였다. 조심하라고 속삭여도 말을 듣지 않았던, 가장 남성적이고 사랑받지 못했던 첫 번째 남자, 유죄다. 프라하를 떠나 조그만 마을로 그녀를 끌고 오더니 다른 여자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그녀를 질투심으로 들끓게 만들었던, 별로 남성적이진 않았지만 사랑스러웠던 두 번째 남편, 유죄다. 두 남편에 대해서 그녀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녀가 좌지우지할 수 있고, 그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유일한 인간이자 다른 모든 사람들의 죄값을 대신 치를 수 있는 인질, 그것은 테레자였다.


o 71, 2 - ... 그녀. 남자 중에서 가장 남성적인 남자의 정자 하나와 여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의 난자가 이룬 부조리한 만남. 테레자라고 이름 붙여진 운명적 순간에 어머니는 실패한 인생의 마라톤을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는 테레자에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며 지칠 줄 모르고 설명했다. ...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