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말

허클베리핀, 스왈로우의 이기용님 시사IN 인터뷰 중에서

조앤디디온 2019. 6. 15. 17:15





O 앞모습은 연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뒷모습은 다르다. 오랜 슬픔이 주는 숨길 수 없는 뒷모습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많이 간다. 제주에 다녀온 뒤 내 음악에 긍정의 기운이 많아져서 그걸 나누고 싶었다. 음악이 슬픔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가 당신의 슬픔을 이해해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며 위로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O 한번 크게 꺾이고 깨어져본 경험이 있는지 여부가 기준이었다. 삶의 변화무쌍함이 가져다주는 우연과 고통이 우리에게 진짜 가치관을 준다. ... 오스카 와일드는 '모두가 진창에 빠져 있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고 했는데 그런 고통을 겪으면 음악에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예술가가 아름다움으로 향할 때, 그것은 택하는 것이라기보다 버리는 것인 경우가 많다. 무엇을 잘 버리는지가 중요하다. 거기에 삶이 들어가 있다. 음악은 음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뮤지션의 삶과 뮤지션이 속한 사회와의 연결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어려움을 극복하면 만들어지는 소리가 있다. 뮤지션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소리는 그가 견뎌온 삶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또한 연주나 노래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작을 하는 뮤지션을 선택했다. 겉모습은 즉자적이고 '감각 덩어리'처럼 보이는 뮤지션이라도, 실제로 만나보면 '딴따라' 이미지와 정반대인 사람이 많았다. 


O 소리와 생각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애썼다. 외형의 소리 말고 내적인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소리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가 관심사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자기 세계, 즉 정교하게 쌓아 올린 생각의 체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 음악이 나오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는 음악을 선율로만 듣지 않는다. 위아래와 좌우를 살핀다. 거기에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O 좋은 음악은 시간을 견디는 음악이다. 좋은 음악은 더 많은 반복을 견디는 음악이다.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이다. 깊고 단단한 이야기를 삶으로 만들었던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쓰면 반드시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O 우리 음악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고 보고,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의 기준에 충실한 음악을 하려고 애쓴다. 우리의 시선은 끝까지 가 있다. 70대, 80대에 음악적으로 할 일까지 생각하고 있다. 길게 보고 더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은 개선하며 갈 것이다. 오직 우리 음악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궁리할 뿐이다. 수많은 어려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아보지 않으면 짐작하기 힘든 것들을 감당하면서 간다. 그만둘 이유가 생활인으로서 넘쳐나지만 다 제쳐두고 인생을 걸어보겠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겠다. 7집은 따뜻하게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빛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음악을 하고 싶다.


                         -  시사IN 2019. 6. 11.자 612호 CULTURE & LIFE IN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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