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등 감상평

이창동 감독의 버닝 후기 감상평 6 - 장면별정리 + 나름의 해석

조앤디디온 2018. 12. 28. 11:28


[ 장면 20 - 분식집, 해미의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새벽 종수 집 근처 ]

종수는 어느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고 있다. 주인인 듯한 두 여성이 서로 눈짓을 하면서 종수를 살피더니, 젊은 여성이 말을 건다. 아무래도 해미의 어머니와 언니로서 말을 건 이는 해미의 언니로 보인다. "종수 아니니..? 맞네..어릴 때 모습 그대로네.." 그리고는 종수의 가족에 대한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다. 그러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여기 어떻게 왔어..? 해미가 보내서 온 것 같은데.. 해미에게 꼭 전해..카드빚 갚기 전에는 절대 집에 못들어온다고.."

종수는 라면을 먹다가 뭔가 결심을 한듯. "혹시 어릴 때 해미가 우물에 빠졌던 거 기억하세요..?" 해미의 언니는 의아하다는 듯이 "우물? 그런 일이 있었어?" 종수는 이어서 말한다. "해미 일곱살 때 우물에 빠진 적 있었거든요. 몇 시간 동안 우물 밑에서 울고 있었던 거예요. 울면서 위만 쳐다보고 있었던 거예요. 누군가 나타나 주길 기다리면서 동그란 하늘 그것만 쳐다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때 해미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한 번 상상해봤어요.."

종수는 정말 해미의 마음을 느낀 듯 사무친다.

그런데 해미의 언니는 무덤덤하다. 오히려 단호하게 "그런 일 없었어. 그런 일 있었으면 왜 우리가 몰라.. 해미가 그런 말해? 걔 이야기 잘 지어내. 감쪽같이. 우리집 옆에 우물도 없었어.." 두 여성은 서로를 바라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묘한 웃음을 흘린다.


새벽 닭이 운다. 종수는 집 근처를 배회한다. 이장을 만나자 이장에게 옛날에 우물이 있었는지, 사람이 빠질만한 깊은 우물이 있었는지 묻는다. 이장은 말한다. "글쎄...그런 우물은 없었던 거 같은데..."





* 우물의 존재는 해미의 기억 속 종수와 연결된다. 해미는 과거의 기억 속에 종수를 간직했다. 종수는 바로 그 기억의 실체가 필요하다. 종수는 벤에게 해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벤은 해미를 태웠다. 종수는 벤을 쫓기 전 우물의 실재를 먼저 확인함으로써 해미의 진심을 알고 싶었는지 모른다.


[ 장면 21 -  종수 트럭을 타고 벤을 쫓다 ]

벤의 집 건물 바로 근처.

종수는 트럭을 탄 체 벤의 집 건물 주차장 출입구를 주시한다. 경찰차가 트럭을 스치는데 경찰의 얼굴이 종수를 응시한다. 얼마 후 벤의 포르쉐가 빠져나온다. 도심을 빠져나가 우회도로를 달린다. 종수의 트럭이 벤의 포르쉐를 쫓는다.

깊은 밤 서울 도심 한 가운데. 종수는 대로를 걷다가 대로가 버스 정류장 부근에 서서 맞은 편 건물 위를 올려다 본다. 빵을 먹으며 똑바로 주시한다. 벤은 그 건물 헬스클럽에서 런닝머신을 달리고 있다. 땀으로 젖은 벤은 런닝머신을 달리며 창밖을 본다. 런닝머신을 멈춘 후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 생각에 잠긴다. 대로가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종수를 본 것일까.


성당. 미사가 집전 중이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예배당에서 빠져나온다. 종수는 계단을 따라 사람들과 함께 내려오다 성당 입구에서 부모님과 함께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고 있는 벤을 바라본다.

미술관. 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붉은 그림 앞에 종수가 서 있다. 미술관 한쪽 오픈된 공간에 레스토랑이 있다. 벤은 가족들과 함께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 정겨운 담소가 종수가 서 있는 그곳까지 공간 전체에 웃음소리가 울린다.

서울 도로 위. 차량들이 정체되어 있다. 긴장감 있는 테마곡이 흐른다. 종수의 트럭이 1차로를 미끄러지듯 천천히 이동한다. 정체된 도로 2차로에 벤의 포르쉐가 있다. 창문을 연 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벤. 종수는 트럭이 포르쉐 바로 옆에 이르자 들키지 않으려는 듯 몸을 낮춘다.

벤의 포르쉐는 도심을 지나 외진 도로를 달린다. 시골길로 접어들어 한 참을 또 달린다. 종수는 허겁지겁 빵을 먹으며 벤을 쫓는다.

외진 시골길에 이르자 어디론가 사라진 포르쉐. 종수는 당황한다. 종수는 트럭을 계속 몰아 포르쉐의 행방을 쫓다가 뒤에서 달려오는 벤의 차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트럭을 숨긴다. 트럭을 세워 두고 걸어서 포르쉐가 사라진 곳으로 비탈을 오른다.

벤은 저수지 둑 위에 서서 정적 속에서 저수지를 바라본다. 벤의 뒷모습이 보인다. 종수는 비탈길을 다 오르지 않은 체 몸을 숙여 벤을 주시한다. 카메라는 멀리서 두 사람을 비춘다.


* 용산참사와 미술관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 종수와 벤. 이들이 한 공간 안에 있다. 철거민들과 국가 내지 정치권력은 용산이라는 지역적 공간에서 철저히 대립했다. 그들에게 그것은 전쟁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화염 속에서 죽어갔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그런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무엇이 어떻게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규명하지 못한 채 시간은 냉정하게 흘렀다. 미술관에 설치된 붉은 그림들은 화염 속에서 일어난 전쟁에 관한 기록이다. 그런데 그런 처절한 전쟁의 기록마저도 누군가는 미술작품으로, 예술로 포장되어 식사의 흥을 돕는 요소로 향유한다. 종수는 미술관에 부유물처럼 떠서 이를 향유하는 벤을 바라본다.


* 고급 레스토랑에서 가족들과 함께 정찬을 즐기는 벤과 대로 위에서 그리고 트럭 안에서 허겁지겁 빵을 먹는 종수의 모습이 묘하게 대조된다. 종수는 굶주린 자로서 허겁지겁 음식을 꾸겨 넣는다. 영화 초반부 해미의 대사가 떠오른다. 헝거. 벤은 배부르다. 얼마 전 비닐하우스를 태운 벤은 지금 포만감으로 충만하다. 그러나 종수는 배가 고프다. 허기를 느낀다. 해미를 먹어버린 벤과 해미를 굷주리는 종수. 영화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종수가 굶주린 자로서 벤을 쫓는 구도로 전개된다.

* 이제 종수는 해미를 찾지 않는다. 벤을 쫓는 종수. 어쩌면 해미의 행방을 찾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해미의 행방과는 무관하게 벤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저수지를 바라보는 벤. 그가 그곳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저수지가 시신을 유기한 장소는 아닐지..벤의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종수. 나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종수가 사냥꾼으로서 먹잇감을 주목하는 듯한 장면으로 각인되었다.

* 해미를 중심으로 두 남성의 욕망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여성의 시각에서는 좀 불편하다. 이창동감독의 영화를 볼 때 여성을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 치환함으로써 여성을 사물화시킨다는 점에서 여성에 대하여 단편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개인적인 소견이다.


[ 장면 22 - 종수의 집 그리고 어느 카페, 종수의 어머니 ]

새벽. 종수는 신음소리를 내며 잠에서 깬다.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종수는 전화를 든다. 한참 후 "종수야..종수 맞지..? 나...엄마야..."

낮. 어느 카페. 종수가 가만히 앉아 있다. 맞은 편에 한 여성이 있다. 종수의 어머니. 자주색 체크 원피스. 올림 머리. 귀걸이와 반지. 눈을 깜박이며 가벼운 웃음을 흘리면서 그녀는 말한다.  "...집에도, 내가 요즘 일하는 백화점 화장실에도 찾아오는 거 있지..시커멓게 입고..꼭 그거 같애. 저승사자. 에이...돈 500만 원이 뭐라고. 내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장기라도 팔았을거야..내가 오죽하면 16년만에 아들을 만나서 이런 소리하겠니.." 종수의 눈치를 살피는 듯 하더니 휴대폰 카톡메시지 수신음이 울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카톡을 보며 낄낄 웃는다. 16년만에 만난 아들에 대한 애절함이나 민망함은 찾아 볼 수 없다.

종수 얼굴에 감정을 토해내려는 듯 격한 심정이 드러난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흔들어 감정을 털어낸다. 그리고는 "제가 해드릴께요. 제가..해결해드린다고요..걱정마세요" 던지듯이 말한다. 종수는 가볍게 웃는다.

"돈 있어? 니가 무슨 돈이 있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미안한 내색이 없다. 종수의 어머니는 카톡을 보며 또 웃는다.

종수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기막히다는 표정이 언뜻 스친다. "엄마.. 옛날에 우리 동네 가운데 쯤에 해미집 있었잖아요. 근처에 우물이 있었어요?" 종수는 해미의 우물 얘기를 꺼낸다. "우물..? 음..있었지. 물 없는 마른 우물" 종수는 반가워서 묻는다. "정말요? 해미가 거기 빠진 적 있다던데.." "그건 모르겠고.. 우물 있었어.. 왜그래?"

종수의 얼굴에 답을 얻은 듯한 표정이 스친다.


* 종수는 더 이상 어머니에게 미련이 없다. 어린 시절 떠나버린 어머니도 종수에게 미련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의 만남은 어머니와의 단절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제 종수에게 어린 시절 소중한 사람은 해미뿐이다. 종수의 어머니는 해미의 기억 속 우물의 실존을 확인하여 준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어쨌든 우물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종수는 확신할 수 있다. 해미의 진심.

* 그동안 수 없이 울렸던 전화벨 소리의 주인공이 종수의 어머니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종수의 어머니였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지만. 이창동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전화벨 소리의 주인공은 의문인 체로 두고 싶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 장면 23 - 벤의 집 ]

이른 저녁. 어둑해진 거리. 종수는 벤의 집 건물이 보이는 곳에 트럭을 세운다. 가만히 운전석에서 정면을 응시한다.

휴대전화벨소리. 벤이다. "종수씨...어디예요..?" "강남이요.." "강남..어디예요..?" "여기가..." 머뭇거리는데 갑자기 운전석 창문을 두드린다. 벤이다. "어쩐지 차가 낯이 익다 했는데..종수씨 여긴 웬일이예요..? 나 만나러?"

종수가 말한다. "좀 해미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서요.." "그럼 전화를 하지..휴..들어가요.. 이왕 왔으니까 들어가서 얘기해요. 차 우리 주차장에 세우고.." 벤은 장을 본 듯 물건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벤이 앞선다. 그 뒤를 종수가 따른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벤이 말한다. "잘되었네..이따 우리집에서 친구들하고 저녁 먹고 한 잔 하려고 했는데..종수씨도 조인해요..지난 번에 종수씨도 같이 봤던 친구들이라 괜찮아요.." "파티하시는 건가요?" "파티라기 보다는 모임이죠..편한 모임" 두사람은 함께 벤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집에 손님들이 많이 오시면 준비할 게 많겠어요.."  "아니요..할록(벤의 발음 알아듣기 어려웠음. 할로윈이라고 한 것 같기도 함) 파티 같은 거라 각자 음식을 들고 오기로 했어요..나는 술하고 간단한 안주만 만들면 되고"  "누가 미리 와서 도와주기로 했는데 좀 늦네요.."

이때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냐옹..냐옹..."  종수는 묻는다."이게...무슨 소리예요...?" 벤이 답한다. "아는 고양이가 있거든요.."

"지난 번에는 없었는데..?"  "예..얼마 전에 주인 없는 고양이 한마리 데리고 왔어요.. 하도 이쁘게 생겨서..." 종수는 고양이를 보았다.. "진짜 이쁘게 생겼네요.."  "그렇죠..고양이 좋아해요..?" "이름이 뭐예요...?"  "아직...이름 짓는 게 의외로 어렵더라구요.." 

벤은 화재를 돌린다. "종수씨는 무슨 소설을 쓰세요...? 이런 거 물어도 되나...?"  "전 아직까지 무슨 소설을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왜요...?"  "저한테는 세상이 수수께끼 같아요.." 고양이가 운다.."냐옹...야옹..." 종수는 화장실을 찾는다.."저 화장실 좀..."


종수는 벤의 화장실로 가서 진열대 서랍을 열어본다. 그곳에 해미의 분홍색 시계가 있다. 종수가 경품으로 받아서 준 바로 그 시계. 종수는 그 시계를 응시하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카페에서 봤던 그 여성이 도착했다. 늦었다면서 미안하다고 몇 번을 사과하는 그녀...벤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고양이가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황급히 고양이를 쫓는다. 종수도 그들을 따라 나간다.

주차장. 벤과 벤의 그녀. 그리고 종수 세 사람은 고양이를 찾는다. "냐옹아, 나비야..." 고양이는 이름이 없다. 종수는 휘파람을 분다.

종수가 어느 차량 뒤편에서 고양이를 발견했다. 고양이에게 다가간다.."냐옹아, 고양아.." 고양이는 다른 곳을 본다. 이내 종수는 "보일아, 보일아.." 불러본다..고양이가 고개를 돌려 종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가볍게 다가와서 안긴다.




벤이 말한다. "신기하네..어떻게 쉽게 잡았지..? 엄청 날쌘 앤데.." 벤의 그녀가 다가와서 "저 한번만 안아봐도 돼요..?" 종수가 그녀에게 고양이를 건네준다.


* 드디어 등장한 해미의 고양이. 보일이. 영화는 벤의 집에 있는 그 고양이가 해미의 고양이임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벤은 자신의 집에 있는 고양이를 두고 '주인이 없는' 고양이라고 말한다. 만일 해미의 고양이가 맞다면 해미는 이 세상에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깨끗이 치워진 해미의 방. 그리고 보일이라는 이름에 반응한 고양이. 어쩌면 고양이는 종수의 목소리를 기억했는지 모른다. 해미의 방에 갈때마다 종수는 고양이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는 벤의 집 화장실 진열대 서랍 안 해미의 시계와 함께 해미의 죽음과 그 죽음이 벤에 의한 것임을 확증한다.


* 벤은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 주지 못한다. 반면 종수는 고양이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 고양이는 해미의 고양이이고 이제 종수의 것이다. 벤에게 낡고 버려진 비닐하우스들의 이름은 의미가 없다. 그냥 재미가 다른 비닐하우스들일 뿐이다. 그러나 종수에게 해미는 단 하나의 존재. 해미인 것이다. 영화는 이로써 종수와 벤의 위치를 완전히 역전시킨다. 즉 가진 자는 종수이고 못가진 자는 벤이다. 종수에게 인생은 수수께끼 같은 신비로 가득차서 그 의미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지만 벤에게 인생은 단순하다. 먹잇감이 있고 요리하고 먹는다. 낡고 버려진 비닐하우스들이 있고 그 중 하나를 골라 태운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벤에게 삶은 소비하는 객체 내지 대상이고, 종수에게 삶은 탐구하는 대상이다. 리틀헝거와 그레잇헝거가 비로소 교차된다.


다시 벤의 집 안 거실. 벤의 그녀가 중국사람들에 관해 얘기한다. 해미가 아프리카의 춤 얘기를 했듯이. 벤의 그녀는 면세점에서 일을 하면서 겪은 경험을 얘기한다. "중국 사람들은 돈을 줄 때 막 던져요..이렇게" 

벤의 지인 여성이 끼어든다. "왜 그런 거예요?" 벤의 그녀가 답한다. 흥이 난 듯이 "걔네들은 돈은 더러운 거예요. 우린 돈을 애지중지하잖아요.. 걔네들은 돈을 막대해요..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가봐요. 중국사람이 진짜 자존심이 쎄거든요.. 막 지폐를 꾸깃꾸깃해서 이.얼.싼.쓰. 돈을 막 던지면서 줘요. 옛다. 가져라 하고"  벤의 지인 남성이 거든다. "중국사람은 미국하고 비슷해. 우리는 우리랑 유교 문화권이라 비슷할 거라고 착각하는데" 여기저기서 끼어든다. "뭐, 어떤 점이 그래?" "대륙이잖아요. 대륙"  "그렇지, 걔네들은 항상 중심이 자기자신한테 있어. 우린 맨날 남의 눈치 보면서 살잖아"

벤의 그녀가 이어서 받는다. "셈플 같은 것도 되게 당당하게 달라고 해요..길거리에서 가게에서 막 주잖아요. 우리 면세점에서는 고가품을 구매해야만 사은품이 나가거든요. 제가 분명히. 메이요!.셈플 없다 해도. 계속 앞에서 요! 요! 있으니까 달라고.." 지인 여성이 또 끼어든다. "근데 난 솔직히 중국남자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중국남자들이 여자한테 잘하잖아. 여자들 애지중지하는거지" 또 다른 여성 "오...여자를 애지중지하는구나. 돈이 아니라.."



* 벤의 그녀 역시 해미와 같이 그녀의 세계에서 경험한 얘기를 한다. 그런데 해미의 때와는 약간 다르다. 사람들은 그녀의 얘기에 관심을 갖고 대화에 동참한다. 해미가 아프리카의 춤을 얘기할 때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재미도 없었다.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았다. 그런데 지금 벤의 그녀가 하는 얘기에는 흥미를 갖는다. 중국. 중국사람들. 돈. 면세점에서 근무 중인 그녀는 중국관광객들을 상대한다. 현재 미국을 맹렬하게 추격하는 중국은 한국에게도 도전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다. 벤의 세계에서 중국은 막강한 자본을 갖춘 권력집단이다. 아프리카의 춤에 담긴 철학적 사유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지만 막강한 자본을 손에 쥔 중국, 중국사람들의 얘기는 충분히 흥미로울 수밖에.



종수는 말없이 앉아서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벤을 본다. 카메라는 종수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벤을 응시한다. 벤은 이번에도 하품을 한다. 그리고는 웃는다. 벤의 그녀를 중심으로 대화가 계속된다.

종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벤의 집을 나온다. 주차장에서 트럭에 타려는데 벤이 부른다. "종수씨! 왜 그냥가요..더 얘기 좀하고 놀다가 가지..해미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서 왔다고 하지 않았나.." 종수는 무심하게 말한다. "이제 얘기 안해도 될 것 같아요.." 벤은 다가 와서 종수의 팔을 잡는다. "종수씨는 너무 진지한 거 같애..진지하면 재미없어요..즐겨야지.." 그리고는 종수의 가슴에 손을 댄다. "여기서 베이스를 느껴야 돼요..뼛속에서부터 그게 좀 울려줘야...그게 살아있는 거지"

종수는 싸늘하게 고개를 돌려버리고 트럭에 올라 타 운전석 문을 닫는다. 인사도 없이 트럭을 몰아 벤을 떠난다.


* 종수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벤의 실체. 해미의 행방. 그리고 벤의 살인에 대해서. 더 이상 벤으로부터 확인할 것이 없다. 벤은 말한다. 진지하면 재미없다고. 베이스를 느껴야 살아있는 거라고. 재미와 베이스.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벤. 그러나 종수는 벤의 삶에 대해 어떠한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얻은 종수는 드디어 무엇을 써야 할지를 알게 된 것이다.


    - 감상평 7 (마지막 결말)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