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을 중심으로 반정에 성공하여 집권한 인조.
인조반정의 주요한 명분 중 하나는, 광해군이 만주족(여진족)이 세운 후금과의 실리적인 외교를 추구한 것을 두고, 오랑캐와 관계를 맺어 명에 대한 사대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폐위시켜야 한다는 데 있었다. 인조와 공신들은 반정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명에 대한 대의를 굳건히 해야만 했고, 철저히 '친명배금정책'을 펼쳤다.
후금은 조선과 화친하고자 했던 누르하치가 죽고 그의 아들 홍타이지가 칸으로서 후계를 잇게 되었는데, 새로운 칸이 된 홍타이지는 계속 주창해오던 대로 조선에 대한 정벌을 개시했다. 정묘호란(丁卯胡亂) 인조 5년(1627년) 1월. 후금의 침략은 맹렬했고 조선의 조정은 급하게 강화도로 파천(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리를 피함)하였다. 다행히 협상에 따라 명과 단교하지는 않되 후금과도 화친하기로 하는 선에서 협약이 이루어져 약 2개월만인 3월 3일 화의에 따라 후금군은 물러났다. 그 이후 조선은 명에 대하여는 군신의 예에 따라 사대를 다하면서 후금에 대하여는 형제의 예에 따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외교를 이어갔다.
그런데 홍타이지가 집권한 후금이 만주와 내몽골 일대를 장악하면서 세력이 확장되어, 국호를 청이라 하고 홍타이지 스스로를 태종이라 하면서 황제로 옹립하였다. 이에 청은 조선에 대하여 더 이상 형제의 예가 아닌 군신의 예로써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인조가 이를 거부하자, 청 태종은 인조 14년(1636년) 12월 13일 조선을 침략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丙子胡亂)이다.
정묘호란 이후 급변한 동북아의 정세 속에서 강성해진 청이 조선에 대하여 군신의 의를 강요하면서, 조선의 조정에서는 명에 대한 의를 지키고 오랑캐인 청을 배척하고 필요하다면 전쟁을 통해 오랑캐를 물리쳐야 한다는 척화론(주전론)과 실리적인 외교를 통해 명과 청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되 강성해진 청을 배척하기 보다는 협상을 통해 화친하여야 한다는 주화론이 대립하였다. 반정의 명분과 성리학적 토대에서 기반을 구축한 조선의 사림들은 단연 척화론이 압도적이었다.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최명길(이병헌)이 청의 적진으로 가서 청의 장수 용골대를 만나 청의 입장을 물어 시간을 끄는 사이 인조(박해일) 일행이 남한산성으로 입성하는 대목에서 시작된다. 청의 침략이 개시되고 예상보다 진격이 빨라 조정은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서둘러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청은 먼저 용골대(허성태)가 군대를 진두지휘하여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언제든 산성으로 돌진할 위세를 갖추었다.
최명길은 세자와 척화론자들을 인질로 보내라는 청의 요구사항을 전하면서 화친으로써 빠른 시일 내에 전쟁을 종결시킬 것을 피력하지만 조정대신들은 맹렬히 반대한다. 오히려 오랑캐와의 화친을 주창하는 최명길의 목을 베어 성문에 걸고 백성들로 하여금 전투력을 제고시킴이 타당하다고 진언한다. 최명길은 전쟁에 대한 대비도 없이 매서운 겨울 추위에 내몰린 백성들과 조정의 현실을 고려할 때 명분만을 내세워서는 '필패'만이 있을 뿐 다른 결과는 예측할 수 없기에 조정과 백성들을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목을 베어서라도 살 길을 찾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남한산성 일대는 눈으로 덮인 채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겪어내야 하는데 추위에 대한 방비책도, 충분한 식량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백성들은 겨우겨우 가마니를 얻어 추위를 피해보았지만 그마저도 말 먹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빼앗기고,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중에도 총과 칼을 들고 청군과 맞서 싸우도록 내몰린다. 배급되는 얼마되지 않는 식량으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고 결국 굶주림으로 죽어나간 말을 잡아 먹으며 배고픔을 채운다. 그런데 식량은 곧 떨어질 것이다.
하얀 눈으로 덮인 세상. 김상헌(김윤석)은 얼어붙은 강을 건너 남한산성으로 입성한다. 그는 선조 29년 27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광해군 3년(1611년) 정인홍의 '회퇴변척소(정인홍이 스승 조식의 변호를 위해 이언적과 이황을 비판하며 배척한 일)'를 극력 비판한 뒤 요직에서 멀어졌다가 인조 초에 다시 등용되어 여러 차례 대사헌을 역임했다. 그는 비타협적인 태도로 이름이 높았으나 강직한 성품으로 신하의 예를 다하였는데, 조정이 위험에 처하자 60리나 떨어져 있었으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산성 성안으로 찾아왔다. 김상헌은 불명예스러운 삶보다 명예스러운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오랑캐와 끝까지 싸워 죽는 길을 택함으로써 명에 대한 군신의 예를 다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외친다. 한편으로 김상헌은 조정에서의 형식적인 논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성내를 두루 돌며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기도 하고 신분 여하를 불문하고 의견을 들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실리적인 방편을 고민하고 대책을 세우기도 한다.
영화는 남한산성으로부터 출성(성을 나옴)하는 두 가지 길, 즉 다소 비굴하더라도 화친으로써 삶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싸워 죽더라도 명분을 지킬 것인가의 두 갈래 길 앞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는지를 시종일관 묻는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각각 두 갈래 길의 주자로서, 각자의 이유를 들어 정당함을 피력한다. 인조가 묻고 두 신하가 답한다.
마치 영화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는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 선택이 저 선택보다 옳다고, 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병헌과 김윤석은 최명길과 김상헌에 빙의되어 시종일관 강직하고 올곧은 모습으로 충신으로서의 모델을 제시한다. 즉 결론은 양 극단에 있으면서도 그둘은 모두 자신의 안위나 사리사욕이 아닌 오직 하나, 조선이 나아갈 길, 국가가 당면한 위기 앞에서 어떻게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을 지킬 것인가를 고뇌하고, 기꺼이 희생을 감수할 각오로 각자의 답을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은 다르지 않다.
이는 오직 자신들의 명분과 사적인 실리만을 앞세워 맹목적인 주장만을 고집하는 김류 등 다른 대신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들에게 백성들의 안위나 형편은 고려할 대상이 아니며 위기 앞에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김류는 잘못된 상황판단으로 백성들을 사지로 내몰고도 이시백(박희순)과 이두갑(진선규)에게 패전의 책임을 돌린다.
영화는 국가의 통치자와 위정자들이 난제 앞에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 전쟁의 참혹한 현실로 내몰린 백성들의 모습들을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하여 보여준다.
영화의 도입부 김상헌이 강을 건널 때에 얼음길을 안내하여 준 나루터의 노인은 홍수로 아들과 며느리를 모두 잃고 어린 손녀를 홀로 키우면서 살고 있다. 그는 전날 인조와 조정대신들이 강을 건널 때에 길을 안내하였지만 쌀 한 톨 받지 못하였다면서 차라리 청군이 강을 건널 때 길을 안내하여 먹을 것을 얻고자 했다. 김상헌은 청군이 강을 건널 때에 안내할 수도 있다는 그의 말에 함께 남한산성으로 입성하면 돌보아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노인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거절한다. 결국 김상헌은 칼로 그를 베어버린다. 노인의 피가 눈으로 덮인 강 위로 천천히 번져 나간다. 노인의 어린 손녀는 할아버지를 찾아 산성으로 오고 김상헌이 소녀를 거두게 된다.
정묘호란 때에 침입한 만주족들로부터 약탈을 당하고 아내와 어린 딸을 모두 잃은 대장장이 서날쇠(고수). 그는 더이상 국가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저 어디를 가든 대장장이로서 천한 신분을 벗어나지 못할 바에는 삶의 터전에서 주어진 운명대로 살다가 죽겠다는 생각으로 산성이 위기에 처했음에도 도망가지 않는다. 역시 정묘호란 때에 부모를 모두 잃은 칠복은 도망치고 싶지만 믿고 따르는 서날쇠가 산성을 떠나지 않자 그와 함께 하고자 성을 지킨다. 서날쇠는 김상헌의 명에 따라 지원군에게 보낼 서한을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성밖으로 나가 이를 전하지만, 정작 지원군들은 그의 천민 신분을 문제삼아 서신을 신뢰하지 않고 천민에게 이를 전하도록 한 조정의 명까지도 이행하지 않기로 결행하고, 오히려 서날쇠를 죽이려고 하다가 청에게 주둔지가 노출되어 몰살당한다. 칠복은 믿고 의지하는 형인 서날쇠가 조정의 서신을 가지고 암행을 나간 뒤 형을 기다리다가 산성으로 진격하여 온 청군의 창에 찔려 죽는다.
청군과 조선의 사신들 사이를 통역하는 통역관 정명수(조우진). 그는 평안도 은산의 관노로 태어나 명에 대한 지원군으로서 강홍립의 부대에 들어갔다가 후금의 포로가 되었는데, 조선에서는 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천민으로밖에 살 수 없었지만 청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아 청 태종의 신임까지 얻어 통역사로서 중책을 맡게 된다. 김류가 협상을 위하여 청군의 주둔지를 방문했을 때 그에게 조선사람으로서 조선의 입장을 헤아려 달라고 편하게 말하자, 그는 조선은 자신을 사람으로 대하여 준 바 없다면서 자신을 조선사람이라 칭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김상헌은 지원군과의 연합작전을 통해 청군과의 격전을 기대하였지만 이는 수포로 돌아간다. 청군은 홍타이지, 태종이 직접 군사를 몰아 남한산성을 맹렬히 공격한다. 청은 홍이포의 막강한 화력으로 산성벽을 허물고 군사의 수적 우위를 앞세워 조선군을 압도한다. 결국 인조는 최명길을 적진으로 보내 태종의 요구조건을 수용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항복을 고한다.
청의 칸, 홍타이지 태종은 조선의 왕인 인조가 직접 자신이 있는 삼전도(지금의 잠실)로 와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를 요구하였다. 인조는 1월 30일 태종의 요구에 따라 패전한 수장인 만큼 출성에 있어서도 왕의 복장이 아닌 선비의 평복장을 입고, 성의 정문인 남문이 아닌 옆문인 서문으로 나와, 삼전도에서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를 행함으로써 항복식을 마친다. 그 후에야 인조와 조정은 용골대의 호위에 따라 도성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한다니, 어찌 굴욕이라고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최명길은 왕의 곁을 끝까지 지킨다.
김상헌은 텅 비어 버린 산성을 돌아보고 나루터 노인의 손녀를 서날쇠에게 의탁한 후 인조의 행렬을 쫓지 않는다. 그는 도성으로 복귀하지 않는데, 영화에서는 그가 자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할 때,
김상헌은 전쟁 후 학가산 아래 초옥을 짓고 청빈한 선비로만 지내는데, 병자호란 이후에도 조선이 명과 통교한 사실이 드러나, 그의 나이 71세 때에 조선을 대표하는 척화론자로서 청국 심양으로 소환되어 국문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돌아온다.
최명길은 김상헌보다 열여섯 살 아래로 일찍이 생원진사시, 문과를 모두 급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는데, 사소한 일로 실직당했다가 인조반정 때에 반정의 실행계획을 뒷받침함으로써 반정 이후 인조의 신임 하에 고위직까지 오른다. 그는 조선의 여러 제도에 대해 개선책을 제시하면서 양명학을 공부하여 성리학적 정치체제에 대한 개혁을 주창한다. 또한 철저히 현실을 직시하여 실리적인 방책을 주창했다. 전쟁 이후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기용되었으나 명과의 관계에서도 실리적인 외교를 취하다 발각되어 김상헌과 함께 청국 심양으로 끌려가 국문을 당하고, 조선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있어 향년 62세에 죽음을 맞는다.
국가는 주변 국가들에 의해 언제나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동북아의 정세란 언제나 혼란과 위기의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고도 조선의 조정은 전쟁에 대한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 조정은 제도를 개혁하고 정비함으로써 국력을 강화하였어야 함에도, 그저 왕권과 신권, 어느 사림의 세력, 즉 붕당이 권력을 잡을 것인지에 몰두할 뿐이었다. 백성의 생활과 형편은 전쟁의 이전이나 이후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위정자들에게 백성들은 그저 수탈의 대상이었고 백성들 역시 더 이상 국가를 신뢰하지 않았다.
영화 속 한 겨울 흰 눈에 뒤덮인 남한산성. 책임을 방기한 권력자들과 그러한 권력자들이 군림하는 국가에 예속된 백성들이 결국 마주해야 하는 현실을 상징한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동북아의 패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거대한 게임의 한 가운데 우리가 있다. 일본은 역사부정과 왜곡을 주저하지 않고 군사대국화의 야망을 포기하지 않은 채 언제든 기회를 노린다. 남북한은 이념으로 분단된 지 70년을 넘고 여전히 체제를 달리하며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언제든 대치하여 적국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혹여 허울뿐인 명분 앞에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영화 속 홍타이지 칸이 대군을 이끌고 고지에서 남한산성을 지켜보고 있음에도 명의 황제를 향해 망궐례를 하는 인조와 대신들의 모습, 굴욕적인 항복을 마치고 돌아온 도성을 바라보는 인조의 황망한 눈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두 번 다시 그런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각성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잠실에는 그때의 굴욕적인 역사를 새긴 삼전도비가 남아 있지 않은가.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는 말, 다시 마음에 새기자.
끝으로, 원작인 김훈 작가님의 남한산성을 비교적 영상으로 잘 옮겼다고 생각된다. 김상헌과 최명길의 고뇌가 눈 덮인 산성의 고립감을 통해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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