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하는 정당한 일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군기(軍器)를 사용하여 민족을 죽이느냐."
100년 전 1919년 4월 1일 충남 천안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던 유관순 열사는 주재소(현 지구대·파출소)를 찾아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하고 이같이 오열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비폭력 저항운동인 만세운동을 조직해냈다. 당시의 상황은 일제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판결문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라 잃은 가슴 아픈 현실과 민족의 고초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1919년 재판소(법원) 체계는 지방법원과 복심법원, 고등법원으로 구성돼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소요죄나 보안법, 출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1,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상고심에서 모두 3·1운동의 정당성을 피력했지만 조선총독부 고등법원은 이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탄압했다.
유 열사를 포함해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펼치다 붙잡힌 독립운동가 조인원 선생 등 9명 역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유 열사는 만세운동을 주동한 혐의로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유 열사는 "삼천리강산이 어디인들 감옥이 아니겠느냐"며 상고를 포기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 열사는 옥중 독립 만세를 외치다 갖은 고문을 받고, 1920년 9월 28일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했다.
아우내 장터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다 붙잡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경성복심법원(2심) 판결문 원본
- 법률신문 2019. 2. 28.자 "일제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판결로 본 독립운동" 기사 중에서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는 유관순열사가 재판에 따라 형을 선고받은 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는 때로부터 출발한다.
맞아서 퉁퉁부은 한쪽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 수감번호를 부여받는다. 수감번호 '三七一'
서대문형무소 여성수감실 8호의 문이 열린다. 나라를 잃고 만세를 부르다 잡혀온 여인들의 황망한 얼굴들이 있다. 저마다 각자 만세를 부른 이유는 달랐지만 모두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대한의 독립,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좁은 감옥. 모두가 앉거나 눕기에는 공간이 너무나 비좁다. 순서를 돌아가며 잠을 청하고, 다리가 붓는 것을 막기 위해 다같이 서서 감옥 안을 빙빙 돌면서 감옥 안에서의 하루하루를 보낸다. 여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작은 양의 배식이라도 나누면서 삶을 이어간다.
비록 일본국의 재판에 따라 징역형을 선고받은 신분이었지만 유관순열사는 일본국의 모든 권력과 권위를 거부한다. 그녀는 식민지국의 일원이 아닌 독립된 조국의 일원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일본국의 경찰이나 사법부는 물론 수감자들에게 직접적인 힘을 행사하는 교정당국조차 그녀에게는 항거의 대상일 뿐이다. 식민을 강요하는 일본국은 그녀에게 부당함 그 자체이다. 이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외침이 어찌 정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같이 서서 감옥 안을 빙빙 돈다. 누군가 아리랑을 부른다. 어느 순간 모두가 아리랑을 부른다. 아리랑은 감옥 전체로 퍼진다. 방에서 방으로 아리랑이 메아리친다. 교도관이 조용히 하라며 교정봉을 두드린다. 어느 순간 모두가 조용해진다. 유관순열사가 말한다. 단체로 울다가 작은 소리에도 멈춰버리는 개구리 같다고. 그녀는 외친다.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 그렇게 일본국의 권력에 맞선다. 조용히 하라고 하면 조용히 하는, 시키는 대로 침묵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식민의 정체성을 거부한다. 대가는 혹독했다. 며칠 간의 고문이 이어진다. 벌겨벗겨지고 무차별적인 폭력이 가해진다. 족쇄에 차인 채 독방에 갇힌다.
독방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녀는 꺾이지 않는다. 감옥 안에서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유관순열사는 몸을 추스리자 노역을 자청해서 바깥 세상의 시간을 가늠한다. 그녀에게 3.1.운동은 반복되어야 했다. 조선의 독립이 올 그때까지 계속되어야 했다. 일본국이 무참하게 무력으로 진압했지만 그것으로 단절되거나 중단되어서는 안되었다. 누군가 그 불꽃을 살려야 했고, 기꺼이 스스로가 작은 불씨가 되고자 했다.
3.1.운동 후 1년이 되는 그날. 다시 외친다. '대한독립만세!' 8호실의 여인들이 함께 외친다. 그리고 방을 넘어 이어진다. 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더니 서대문형무소 전체로 퍼진다. 담장을 넘어 도시가 술렁인다. 감옥 안에서의 외침이 감옥 밖 세상을 일깨운다.
교정당국이 발칵 뒤집히고 결국 주동자로 그녀가 지목된다. 그녀는 열 손가락의 손톱까지 뽑히는 극한의 고문을 받고 온몸을 꼼짝할 수 없는 벽관에 갇힌다. 식민의 백성임을 자인하고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구하였다면 선처를 받거나 살았을지도 모른다. 일본 천황의 감형조처에도 그녀는 제외되고 만다. 모두가 감형으로 출소한 이후에도 그녀를 향한 무차별적인 폭력은 계속된다.
그녀를 고문해온 일본의 교정당국자는 그녀의 배를 걷어차면서 말한다. 그녀와 같은 후손을 낳게 해서는 안된다고. 항거의 싹을 제거해야 한다고. 차고 차고 또 찬다.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흐른다. 피가 흘러 온사방으로 퍼진다. 그녀는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다. 누운 채로 꼼짝을 할 수 없는 상태로 그녀는 죽어간다. 자궁파열 등 고문의 후유증으로 열사는 잠든다. 1920년 9월 28일.
감옥 안에서 모범수형자로서 노역을 하던 한 노인이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냐고. 나도 열사에게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고. 그냥 타협해서 일단 살고봐야 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쓰러진 채 열사는 답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나요?" 그 대답에 어떤 설명도 없다. 나는 이 대목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렸다. 예수 역시 그를 재판하고 십자가형에 처단한 로마의 권력자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유 열사는 기독교인으로서, 대한국민으로서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에 이르렀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자유롭고 독립된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과연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에 이를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유관순열사와 함께 한 여인들을 담았다. 기생으로서 수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된 김향화를 비롯하여 수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엔딩자막이 올라가면서 유관순열사를 비롯하여 여성들 한 명 한 명의 수형기록카드가 넘어간다. 100년 전 그날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면서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살기를 열망했던 그분들의 얼굴이 우리를 주시하는 듯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조국. 그곳에서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 듯했다. 유관순열사의 삶을 애도하는 데에만 그칠 수 없다. 막연히 주어진 자유를 탐닉하기만 할 수 없다. 우리 역시 다음 세대에 더 자유롭고 더 당당한 독립된 조국을 이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맞서고 항거해야 하는 부당함. 싸워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먼저 내 안의 이기심, 안이함과 맞서야 할 것이다. 그냥 안주하고픈, 이 정도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타협적인 마음과 싸워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처한 현실 바로 그곳에서 자행되는 부당함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영화에서 유관순열사와 대척점에 있는 한 인물이 있다. 교도관 정준영. 그는 그저 제대로된 직장이 필요하다. 부모님과 가족들을 부양하는 데에 안정된 직장. 그것만 제공된다면, 그는 일본국의 개가 되어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다. 거기에 어떤 의문도 없다. 그는 이러한 자신을 두고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유관순열사는 말한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그것은 수치스러운 굴종의 삶이라고. 진정한 자유인은 누군가의 개가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광복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의해 친일행적이 드러났으나 반민특위가 강제해산됨으로써 처벌을 면했다고 한다. 유관순열사에게 가해진 가혹한 고문에 동조한 자로서 그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우리에게 과제가 남아 있다.
3.1.운동 100년. 후손으로서 독립선언문의 세 가지 약속을 새겨본다.
하나, 오늘 우리의 독립선언은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한 민족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드날릴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뜻을 마음껏 드러내라.
하나,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끝으로 영화제작발표회에서 유관순열사를 연기한 고아성이 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유관순열사를 연기한다는 것이 배우로서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고아성배우에게 수고했다고, 잘 연기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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