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등 감상평

영화 국가부도의 날 후기 감상평(일부 스포 있음)

조앤디디온 2019. 4. 15. 05:17


2018년

감독 최국희

주연 김혜수, 유아인, 허준호, 조우진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IMF 구제금융 시기, 사업부도와 실업 등으로 인한 자살기사가 계속 이어졌다. 주변 지인들 중에도 가족 중에 경제적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리곤 했다. 기업들의 연쇄적인 부도와 대량 실직으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빈곤에 내몰렸고, 은행들은 통합되면서 소규모 금융기관들이 문을 닫았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던 다수의 사람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 시기를 두고 단순히 금모으기 운동으로 국난을 극복했다는 훈훈한 역사적 사건으로 추억할 수만은 없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때의 기억을 잊은 것은 아닐까.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상업영화임에도 잘 만든 기록영화 같은 인상을 준다.


1997년. 국민소득 10,000달러에 이르고 OECD 가입으로써 경제선진국 반열에 들었다며 연일 경제 호황에 관한 뉴스 보도가 이어진다. 기업간 거래에 있어 신용을 매개로 현금이 아닌 어음 결제수단이 일반이고, 다수의 종합금융사들은 어음을 담보로 한 기업대출을 통해 실적을 올린다. 국민들은 국가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없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팀장 한시현(김혜수)은 외환위기의 징후를 파악하고 선제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한국은행 총재, 그리고 재정국 차관으로 이루어진 대응팀은 외환위기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두고 대립한다. 한시현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우선적으로 외환보유고의 현황을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외환위기로 초래될 상황에 대비하도록 하되,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의 차입을 통해 가능한 자주적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러나 재정국 차관(조우진)은 이에 반대하면서 외환위기 상황을 철저히 은폐한 채 IMF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데, 당연히 IMF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아무런 이의 없이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IMF는 국내 기업들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를 대폭 개방하고 특별히 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인의 소유가 가능하도록 정책을 수정하며,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여 대량 해고가 가능하도록 조처하는 등의 일방적 조건을 요구했다. 이에 대하여 한시현 팀장은 미국 정부 측 관계자가 IMF 협상단과 동행한 이유를 추궁하며 미국이 배후에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면서 경제적 자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맞선다. 그러나 재정국 차관은 함팀장에게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웃을 뿐이다. 그는 오히려 사전에 대기업의 승계자(삼성의 이재용으로 추정된다.)를 만나 외환위기 상황과 IMF 구제금융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이를 이용하도록 조언한다. 한 팀장을 지지했던 경제수석이 교체되고, 재정국 차관과 하버드 동문을 운운하던 신임 경제수석이 임명되어 일사천리로 IMF 구제금융 절차를 진행한다.


종합금융사에 근무했던 윤정학(유아인)은 각종 경제지표와 실물경제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여 전반적인 실태를 간파하고 과감히 사직서를 던지고 퇴사한다. 그는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적 상황을 예측하면서 투자자들을 설득하는데, 그 중 관심을 보인 개인투자자 노신사(송영창)와 오렌지(류덕환)의 자금을 기반으로 달러를 매입하여 급등한 환율에 의한 차익으로 크게 이익을 보고 다시 그 자금으로 폭락한 부동산을 매입함으로써 IMF 구제금융 시기에 오히려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반면 소규모 중소기업으로서 그릇 제조업체를 운영 중인 한갑수(허준호)는 연일 경제호황을 보도하는 뉴스만을 신뢰하여 국가가 외환위기 상황에 직면한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백화점 납품건을 성사시키고자 어음결제를 수락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기업들의 연쇄적인 부도가 있고 대량 납품을 계약한 백화점마저 부도에 이르자 대금으로 수령한 어음 역시 부도처리된다. 백화점 계약 건을 설득했던 동업자는 처가의 자금까지 끌어와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였고 채권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하여 구속된다. 근로자들의 임금과 거래처 대금까지 해결하려면 살고 있는 아파트마저 처분해야 할 상황에 이른다. 함께 이겨내자며 결제일까지 미루어주던 거래처 사장마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정부의 정책이 국민 한 사람의 선택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영화는 단적으로 보여준다. 윤정학과 같이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가 아닌 독자적인 판단에 근거한 투자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과연 자본의 힘을 빌려 국가적 위기 속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IMF 시기 폭락한 부동산을 매입함으로써 소위 가진 자는 더 큰 부를 축적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결국 IMF 시대를 거치면서 대기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규모로 성장한 반면 중소기업은 자생적 기반을 잃어갔고 노동시장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으며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외국자본이 우리 기업들을 헐값에 사서 막대한 차익을 뽑은 후 먹튀를 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다.


영화의 처음. 미국 투자기관의 한 직원이 회의를 마친 후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 자판으로 지시한다. 즉시 한국에 대한 모든 자금을 회수하라고.

영화의 마지막. 기획재정부 직원 이아람(한지민의 특별출연)이 사설 금융통화감독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한시현팀장을 찾아온다. 한팀장은 더이상 정부 측에 협조하고 싶지 않다고 냉소적으로 대하지만, 기획재정부 직원은 한팀장에게 현재의 경제현황에 대한 분석자료를 제시하며 한팀장의 조력이 시급하다고 역설한다.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박근혜정부는 경제정책의 수장이 대놓고 빚을 내어 집을 사라고 국민들을 부추겼다. 너도 나도 대출을 받아 아파트와 상가, 토지를 매입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고 전국적으로 부동산 광풍이 몰아쳤다. 시장은 거품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지금.

가계부채의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

폭탄을 제거하고 위험을 감소시키는 몫은 현재 정부의 몫이고, 국민 역시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국가부도의 날 영화가 기록영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영화 속 상황들이 20년이 지난 지금 역시 반복될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도, 국민들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20년 전 그때의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


김혜수씨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