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글, 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 Walden 1 : 생활의 경제학 - 더 클래식 출판

조앤디디온 2019. 1. 10. 17:23




o 8 - 대부분의 책은 일인칭 대명사 '나'를 생략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자기중심적이라는 측면에서 여타의 책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하는 사람이 결국 일인칭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자기 자신만큼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안다면, 굳이 자기 이야기만 하려 드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경험이 일천한 탓에 '나'라는 주제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작가란 다른 사람의 삶에 관해서만 미주알고주알 적어 내려갈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에 관해서도 소박하고 진심 어린 글을 써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

o 10~11 - ,.. 하지만 그런 의식적인 고행도 내가 매일 목격하는 마을 주민의 힘겨운 삶의 모습에 비한다면 그리 비현실적이거나 놀랍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노동도 내 이웃이 치르는 고생에 비하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다. 헤라클라스야 열두 가지 고역만 치러 내면 되었지만, 내 이웃은 괴물을 사로잡거나 그 목을 베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노동을 끝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뜨겁게 달군 인두로 히드라의 머리를 지져 줄 친구도 없기에, 머리 하나를 잘라 버리는 순간 두 개가 다시 솟아 나오는 광경을 지켜봐야 한다. ... 누가 그들을 땅의 노예로 만들었을까? 왜 인간은 한 줌 먹을 거리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연명해 갈 수 있거늘, 굳이 60에이커(약 26만 제곱미터)나 되는 땅을 부리려 하는가? 뭐하자고 태어나자마자 무덤을 파기 시작하는가? 그들은 앞에 놓인 이 모든 짐을 한평생 밀고 나가야 할 뿐 아니라, 힘닿는 한 훌륭히 살려 애쓰기까지 해야 한다. ...


o 15 - 나는 우리가 흑인 노예제도라고 하는, 역겨우면서도 다소 외래적인 형태의 인간 예속 제도에 몰두해 있을 만큼 경박하기가 이를 데 없다는 사실에 때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남북 양쪽에는 인간을 노예로 만들려고 눈을 번뜩이며 기회만 노리는 자가 수도 없이 많다. 남부의 노예 감독 밑에서 일하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북부의 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노예 감독관 노릇을 하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인간 내면의 신성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밤낮으로 장터를 오가느라 도로를 달리는 짐마차꾼을 보라. 그의 내면에 신성이 조금이라도 꿈틀대고 있겠는가? 그에게 가장 큰 의무란 말에게 건초와 물을 먹이는 것이다. 그러니 받아야 할 운송료와 비교해 봤을 때, 운명이란 것이 그에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겠는가? 그저 '소란을 일으키는 나리'를 위해 마차를 몰고 있을 뿐이리라. 그가 얼마나 신을 닮았으며, 또 얼마나 불멸의 존재이겠는가? 불멸의 신성한 존쟁이기는커녕 자신의 평판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즉 스스로의 행동 탓에 얻은 평가의 노예이자 죄수가 되어 비굴하고 천박하게 굽실거리며 온종일 막연한 두려움에 떠는 그의 모습을 보라.

o 21 - 자연과 인간의 삶은 우리의 기질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인생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어느 누가 미리 예측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 서로의 눈을 잠시 들여다보는 것보다 세상에 더 큰 기적이 있을까? 인간은 짧은 시간 안에 세상 모든 시대, 아니 모든 시대의 온갖 삶을 살아야 한다. 역사와 시와 신화를 보라! 다른 이의 경험을 적어 놓은, 이보다 더 놀랍고 유익한 글이 세상에 또 있겠는가.


o 23~4 - 이제는 앞서 내가 언급했던 여러 불안과 근심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자. 그런 걱정이 정말 필요하며 또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문명의 한가운데서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지 알고자 한다면, 원시적인 변경 지역의 생활 방식을 따라 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내가 말하는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란, 인간이 노력을 통해 얻는 것 중에서 처음부터 또는 매우 오랫동안 사용해온 탓에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돼 버린 것을 의미한다. 즉, 야만성, 가난, 철학 등의 이유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도 그것 없이는 살아갈 엄두조차 내지 않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피조물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란 '먹을 것' 단 한 가지밖에 없다. 평원의 들소에게는 입에 맞는 약간의 풀과 마실 물만 있으면 충분하다. 물론 숲이나 산 그늘에 들어가 몸을 누일 장소를 찾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동물은 먹이와 잠자리 외에 더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사실 이곳과 같은 기후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식량, 주거, 의복, 연료 등 크게 네 가지 항목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이 확보된 후에야 우리는 자유와 성공에 대한 기대를 품고 인생의 진정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준비가 된다. ...


o 27~8 - 대부분의 사치품과 삶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여러 물품은 우리의 일상에 그다지 필요치도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의 발전에도 방해가 된다. 사치품과 편의품에 관해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하자면, 예로부터 지혜로운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소박하고 빈곤한 삶을 살았다. 고대 중국,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외적으로는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으나 내면은 그 누구보다도 풍족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이 위치한 소위 '자발적 빈곤'이라는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인간의 삶을 공정하고 현명한 눈으로 관찰할 수 없다. 농업이든 상업이든, 문학이나 예술 어느 분야에서든, 사치스러운 삶을 통해 이루어 낸 결실은 그 또한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철학자는 없다. 그러나 과거 철학자의 삶이 탄복을 자아냈듯이, 이제는 철학을 가르치는 일도 칭송할 만한 것이 되었다. 단지 심오한 사상을 품고 있다거나 나름의 학파를 세운다고 해서 절로 철학자가 되지는 않는다. 지혜를 사랑하고 그것이 가르치는 대로 소박하고 독립적이며 관대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론상으로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삶의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


o 29~30 - 나는 천국에 있든 지옥에 있든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고 부자보다도 더 웅장한 저택을 지어 살며, 더 풍성하게 돈을 써도 결코 궁핍해지지 않는 강하고 용감함 천성의 사람들에게 어떤 규칙을 가르치고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물론 그들이 어떻게 그리 살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지, 혹은 꿈에서나 존재하는 사람들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또한 정확히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서 격려와 영감을 얻으며 연인들 간에나 느낄 법한 애정과 열정으로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설교하려 함도 아닌데, 사실 나 역시도 어느 정도는 그런 부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든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자신이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 잘 아는 이들에게 충고하려 함도 아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주요 대상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이나 타고난 시대만을 탓하며 적극적으로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게으르게 불평만 일삼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은 나름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며 고집스럽게 불만을 터뜨려 대는데, 겉으로 보기에만 부유할 뿐 그들은 지독히도 가난한 사람들, 즉 쓰레기만 잔뜩 축적해 놓은 채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또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부류들이다. 그들에게 황금과 은은 스스로의 발을 옭아매는 족쇄나 다름없다.


o 35 - ..숲은 내가 가장 많이 돌아다녀 잘 아는 곳이었다. 평소대로 자본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대신, 나는 이미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자본만 가지고 곧바로 마음먹은 바를 행동에 옮겼다. 내가 월든 호숫가로 간 목적은 돈을 들이지 않고 살려는 것도, 대단한 희생을 치르며 살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사적인 삶을 살아가자는 생각에서였다...


o 39 - ...무엇이 진실로 존중할 만한가를 따지기보다는, 무엇이 세상 사람의 눈에 존중할 만한 것으로 보일까에 더 신경 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보다 외투나 바지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o 46 - ...다시 말해 옷을 비웃음거리가 아닌 신성한 대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진지한 눈빛과 그 눈빛을 통해 전달되는 참된 생명력이다.


o 60 - ...문명은 궁전과도 같은 집을 만들어 냈으나, 그 안에서 살아갈 고귀하고 고결한 인품의 인간을 탄생시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약 문명인이 추구하는 바가 야만인이 추구하는 바보다 훨씬 가치 있지 않다면, 문명인이 단지 하찮은 생필품과 육체적 안락을 얻는 데 생의 대부분을 바친다면, 그가 굳이 야만인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머지 가난한 '소수'는 어떻게 살아갈까?...한 계급의 호화로운 생활은 다른 계급이 궁핍하게 생활해야만 균형이 맞춰지는 것 아니던가. 한쪽에 화려한 궁전이 있으면, 다른 편에는 구빈원과 침묵하는 빈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o 73 - 어느 날 도끼 자루가 빠지는 일이 생겨, 나는 호두나무 생가지를 잘라 돌로 쐐기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는 쐐기가 다시 빠지지 않도록 나무를 불리려고 도끼를 호수의 얼음 구멍에 담가 두었다. 그때 줄무늬 뱀 한마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뱀은 내가 그곳에 머무는 내내 최소한 15분 이상을 호수 바닥에 가만히 가라앉아 있었는데,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아직은 동면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간도 같은 이유로 현재의 비루하고 원시적인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자신을 일깨우는, 도약하는 봄기운의 영향을 느끼게 된다면, 더욱 고결하고 고차원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깨어나야만 할 것이다.


o 82 - 1845년의 3월 말쯤, 나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월든 호숫가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 근처에 집 지을 터를 봐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화살처럼 곧게 뻗은 한창때의 키 큰 백송나무를 목재로 쓰기 위해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


o 99 - ... 소박하고 자주적인 정신의 사람은 아무리 군주의 지시라고 해도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다. 참된 인재는 결코 황제의 시종이 되지 않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도 아주 소량을 제외하고는 금이나 은이나 대리석이 아니다. ...


o 122 - 간단히 말해, 나는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만 살아간다면 지상에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일은 여가처럼 즐거운 것이지 결코 고난이 아님을 경험으로 터득했을 뿐 아니라, 확신하기까지 한다. 소박한 국가의 국민이 생계 수단으로 추구하는 바가, 비교적 안위적인 삶을 살아가는 민족에게는 여전히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