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은 아래로 흘러 ‘하청’에 고인다
* 기사 일부 발췌
스물세 살 청년 ㄱ씨가 사망했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영세 도금업체에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유해 화학물질에 중독되었다. 5월2일 입사해 주로 보조업무를 하던 그는, 5월28일 물 30ℓ와 시안화나트륨 30g을 도금조(전기도금을 하는 통)에 넣는 작업을 처음 했다. 맹독성 가스인 시안화수소가 발생하는 작업이다. 이날 담당자가 늦게 나오자, 입사 27일차 신입은 마스크도 안 쓰고 작업에 투입되었다. 작업을 마치고 화장실에 다녀온 그는 음료를 마시고 작업장에 들어가다 쓰러졌다. 공장 근처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뇌사 상태로 버티다 6월18일 사망했다.
시안화수소의 ‘시안’은 청산가리의 ‘청산’에 해당한다. 흡입하면 치명적이어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에서도 ‘관리대상 유해물질’로 지정했다. 이런 물질을 다루는 사업주는 위험을 노동자에게 알리고, 보호구를 지급하며, 환기시설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사고가 난 도금조에는 환기시설인 국소 배기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시안화수소를 다룰 때는 방독 마스크나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주입하는 송기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원래 담당 직원은 방진 마스크만 쓰고 해왔다. 그나마 사고를 당한 청년은 방진 마스크조차 쓰지 않은 상태였다. 이 업체 대표 유 아무개씨는 “위험한 줄 알고 들어왔고 안전교육도 했다. 보호구도 다 착용했는데 하나만(마스크만) 안 쓴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보호구란 고무장갑·장화·앞치마다. 유해가스 차단과는 거리가 멀다. 조성식 한림대성심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방진 마스크는 말 그대로 먼지를 막는 마스크여서 유해가스에는 효과가 없다. 시안화수소가 세포호흡을 방해해서 고농도로 노출되면 급사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은 방독 마스크도 위험하고, 송기 마스크가 제일 안전하다. 영세 사업장에서 맹독성 물질마저 관리가 안 되는 장면을 여실히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이 업체의 직원은 숨진 청년을 포함해 6명이다.
정부가 관리하는 유해 화학물질에 급성중독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에서 2016년 경기도 부천과 인천에 있는 삼성·LG 3차 하청업체에서 스마트폰 부품을 만들던 20~30대 노동자 6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되거나 시력 손상, 뇌 손상을 입었다. 모두 파견 노동자였다. 메탄올 역시 산안법상 관리대상 유해물질이었지만 현장에서 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에 파견된 것 자체가 불법인 상황이었다. 인천 남동공단의 파견업체 대성컴퍼니를 통해 삼성전자 3차 하청업체 BK테크에서 4개월간 일하고 2급 시각장애를 얻은 전정훈씨(36)는 “메탄올을 쓴다고, 위험한 물질이라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알코올 냄새가 나서 일반 알코올인 줄 알았다. 일회용 면 마스크만 지급되었고, 얇게 코팅된 장갑을 꼈는데 쓰다 보면 젖어서 금세 샜다. 환기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화학물질 관리체계의 사각지대에서 취약노동을 하는 이들이 급성중독으로 목숨을 잇달아 잃었다. 2017년 8월 스물세 살 청년 ㅇ씨가 화학물질에 중독되어 사망했다. 그는 경기도 안성의 직원 수 20여 명인 소화기 제조업체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며 ‘HCFC-123’이라는 화학물질을 소화기에 채워 넣는 일을 했다. 역시 제조업 불법파견이었다. HCFC-123은 반복 노출되면 간 손상 위험이 있는 물질이지만, 관리대상 유해물질 목록에 아예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곳에서 일한 누구도 위험성을 교육받거나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받지 못했다. 작업 현장에 환기시설은 없었다. 그는 급성 독성간염을 앓다 지난해 8월24일 사망했다.
이렇듯 화학물질 중독, 특히 급성중독 관리체계가 미비한 상황에서 위험은 ‘아래’로 흐른다. 메탄올 사건에서도 3차 하청업체에서 일한 파견 노동자들이 피해를 받았다. 소화기 제조업체의 경우 따로 원청이 없는 직원 20여 명의 소규모 업체였지만, 독성간염을 앓다 사망한 1명과 회복된 2명 등 피해자 3명이 모두 파견 노동자였다.
시안화수소 중독 사고가 발생한 업체는 통신·전자·반도체·자동차 부품 도금을 하는 업체다. 이 업체 직원은 “원청이 누군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5차 내지 6차에 해당하는 다단계 하도급의 맨 끝에 해당한다. 사고 업체와 같은 도금단지에 있는, 직원 8명의 다른 업체 대표는 “우리는 원청이 80개다”라며 ‘○○테크’ ‘○○금속’이라 적힌 파일철 수십 개를 보여주었다. 그는 “원청이 책임지라고 하는데 기자들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라고 말했다.
사외 하청은 여전히 제외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중금속, 유기화합물, 기타 화학물질에 중독되어 사망한 노동자는 2015년 23명, 2016년 24명, 2017년 34명이나 나왔다. 작업환경 측정 결과 화학물질 노출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는 대부분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으로 파악된다.
한림대성심병원 작업환경의학과 조성식 교수는 최근 일련의 사건에서 피해자가 영세·파견업체의 20~30대 노동자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관리가 잘 안 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화학물질을 취급해야 하니 결국엔 떠넘기고 떠넘겨서 영세 사업장으로 가고, 영세 사업장에서 또 파견 노동자한테 가는 압력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런 곳은 노조도 없어서 자신을 보호할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다. 특히 노동시장에 갓 진입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충분히 주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한 작업에 투입하다 보니 미숙련된 사람들이 중독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 당분간 이런 사고가 계속 일어날 수 있다.”
1988년 열다섯 살 문송면군이 사망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온도계 제조공장에서 최소한의 보호구도, 제대로 된 환기시설도 없이 일하다 수은에 중독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나아졌을까. 2015년 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철거 공사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수은에 급성중독되는 사고가 있었다. 철거 공사는 4단계에 걸쳐 하도급이 이뤄졌다. 이제 위험 업무는 모두의 일이 아니게 되었고, 정작 그 일을 하는 취약 사업장에서는 산안법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의 한 도금업체에서는 ‘방독 마스크 착용’이라 적힌 표지판 아래 한 노동자가 면 마스크를 끼고 작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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