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등 감상평

어바웃 슈미트(2003. 잭 니콜슨) 감상평 리뷰(줄거리 스포 있음)

조앤디디온 2020. 5. 11. 15:20

 

영화를 다 본 후 떠오른 단 한 문장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의 슈미트는 꿈이 있었다. 회사를 세워 자신만의 기업으로 키워내는 것.

그러나 그는 꿈과는 달리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으로 평생을 성실하게 일하였다.

전무직까지 승진하였으나 때가 되니 회사는 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는다. 정년퇴직은 정하여진 순서로 그는 젊은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줘야만 했다.

평범한 가장으로서 아내에게 충실했고(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라는 아내의 말을 어기지 않을 정도로^^)

하나뿐인 딸을 잘 키웠다고 자부했다.

매사에 알뜰하게 살았고 그래서 퇴직 이후 대비가 잘 되어 있다.

 

아내와 지인들과 함께 하는 정년퇴직 피로연. 그의 기분은 어딘가 씁쓸하다.

친한 친구 래리는 일장연설을 하는데, 슈미트의 일생에서 잘 한 일이라고는 퇴직할 때 경제적인 여유를 누릴 수 있도록 재무관리를 잘 한 것뿐이라면서 축하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한다.

아내는 오직 집을 가꾸고 흐트러짐 없는 일상을 유지하면서 남편의 은퇴로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진 만큼 고급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다닐 생각에 흥겹다. 아내에게도 그의 퇴직은 그저 정해진 수순일 뿐 인생에 있어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에게 인생은 아직도 의미를 찾아야 하는 그 무엇이다.

여전히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서류를 뒤적이고 할 일을 찾지만 할 일이 없다.

아내는 캠핑카에서 아침을 먹자며 그를 불러내고 함께 보낼 새로운 일상에 즐거워하지만, 슈미트는 조금도 즐겁지 않다. 오히려 그런 아내가 낯설다. 42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인데 조금도 공감할 수 없다.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TV만 보는데, 세계구호기구의 광고를 보고 친구가 피로연에서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나름 의미있는 일을 하고자 탄자니아의 한 꼬마에게 후원을 약정한다.

퇴직 전 진행했던 보험아이템 관련 의견을 전하고자 회사를 방문했으나, 후임은 그의 방문이 반가울리 없고 그의 말을 듣는둥마는둥이다. 자신이 처리했던 서류들은 폐기처분 대상으로 회사 폐기물 보관장소에 쌓여있다.

하나 뿐인 딸은 물침대 영업사원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그는 예비사위가 마땅치 않음에도 아내는 그가 돈이 많다는 이유로 흡족해한다. 딸 역시 결혼에 있어 아빠의 뜻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후원을 약속한 탄자니아 꼬마 은두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이런 상황에 분노가 치민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우체국에서 은두구에게 쓴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데, 이것이 무슨 일인가. 그의 아내가 죽어있다.

 

 

뜻하지 않은 아내의 죽음. 일단 침착하게 장례를 마친다. 아내의 관도 신중하게(?) 고른다.

딸과 예비사위가 와서 장례를 마친다. 친구 래리는 이번에도 과하게 슈미트를 위로한다(그 이유는 뒤에서 드러난다.).

딸은 결혼식 일정 때문에 서둘러 떠나야 한다고 하지만 슈미트는 딸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위로한답시고 예비사위가 하는 말과 행동은 왜그렇게 못마땅한지. 거기다 그가 하고 있는 다단계사업에 투자를 제안하는데 슈미트는 불안하기까지 하다. 딸의 결혼을 말려보려고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인색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뿐이다. 엄마의 관을 왜 그렇게 저렴한 것으로 하였는지, 캠핑카를 사면서 굳이 엄마에게 돈을 쓰도록 한 일 등.

 

결국 딸과 예비사위는 떠나고 슈미트는 홀로 남는다. 늘 정돈되어 있던 집은 순식간에 쓰레기장처럼 엉망이 되었다. 정돈되어 있던 그의 삶이 통째로 사라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그만 아내가 모아둔 연애편지를 발견한다. 상대방은 자신의 절친 래리다! 배신감으로 벌벌 떨면서 친구를 찾아가 흠씬 두들겨 팬다. 젊은 날 잠깐의 해프닝이었다는 친구의 변명이 들릴 리 없다. 아내의 잔소리를 상기하면서 마치 보복이라도 하듯이 서서 소변을 보면서 화장실 여기저기 소변을 뿌려대지만 마음이 풀릴 리 없다.

 

어느 날 아침 슈미트는 딸에게 가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캠핑카를 몰아 고속도로를 달린다. 그러나 반길 줄 알았던 딸은 그가 곧 도착한다고 전화하자 결혼식 이틀 전에 오라면서 돌아가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그가 아니어도 신경쓸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시어머니와 준비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슈미트는 경로를 바꿔 어린시절 그가 살았던 도시로 간다. 잠시 어린시절을 추억하고 캠핑카 구역에서 어느 부부를 만난다. 그들은 은퇴 이후 함께 작은 캠핑카를 타고 여행 중이다. 부부는 캠핑카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이 자랑이다. 아내는 심리치료사인데 남편이 맥주를 사러간 사이 슈미트에게 심리학적 통찰로 그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지적한다. 마음이 동한 슈미트는 그만 그녀에게 추근대면서 키스하는데 당황한 그녀는 격분한다. 슈미트는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줄행랑을 친다. 그 일을 계기로 친구와 아내 역시 그런 순간적인 충동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며 친구에게 화해의 음성을 남기는데, 이런! 전화기 버튼을 잘못 누르는 바람에 음성녹음이 날아간다.

 

캠핑카 지붕 위에서 밤 사이 하늘의 별을 보며 인생을 돌아본다.

아침이 되자 불현듯 자신이 할 유일한 일이 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딸의 결혼을 말리는 것.

급하게 캠핑카를 몰아 딸이 있는 도시로 간다. 예비사위의 집으로 간 슈미트.

그를 반기는 것은 예비사위의 어머니 로버타 허첼(케시 베이츠 - 능청스러운 연기가 압권이다!). 그녀는 이혼하고 아들을 홀로 키웠다. 아들의 아버지인 전남편과는 지금도 교류하지만 여전히 티격태격이다. 예비사위의 가족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이상하다.

결혼식 준비로 신경이 예민해진 딸은 함부로 말을 걸 수 없고, 겨우 힘들게 꺼낸 결혼을 재고해보라는 아버지의 말에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을 가졌느냐며 따지고 들면서 화를 내고 가버린다.

쓸쓸하게 사위의 방으로 들어와 잠을 자려는 슈미트. 이번에는 물침대가 문제다. 사위의 침대는 그가 판매하고 있는 물침대인데, 슈미트는 제대로 눕기도 힘들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제대로 목을 가눌 수도 없다. 누워서 거동도 못하는 슈미트에게 스프를 떠먹이면서 사돈인 허첼은 말한다. 자신의 아들과 슈미트의 딸은 속궁합이 기막혀서 아무리 싸워도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음흉한 미소를 던진다. 그러더니 유효기간은 지났지만 약효가 좋은 약이라면서 권하고 그 약을 먹은 슈미트는 겨우겨우 결혼예행연습에는 참여하지만 약에 취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약기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서 반신욕을 권하는 허첼의 말대로 슈미트는 반신욕을 하며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도 잠시 허첼이 알몸으로 욕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이혼녀와 홀아비가 서로 외로움을 달래면 좋다는 둥 추파를 던진다. 기겁을 한 슈미트는 도망친다.

 

결국 딸은 예정대로 결혼식을 마친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마이크를 잡게 된 슈미트. 결혼에 대한 폭탄선언을 할 것 같았지만 그는 딸과 사위에 대한 자신의 애정과 결혼까지 함께 하여 준 사돈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였다. 그의 진심은 무엇일까. 알 수 없다. 딸이 자신의 돈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는 슈미트의 허탈한 멘트 안에 그의 마음이 담겼을 뿐.

 

집으로 돌아온 슈미트. 어딘가 힘이 모두 빠져버린 듯하다.

조용히 서재로 들어가 우편물을 뒤적이는데... 탄자니아 수녀원에서 어느 수녀님의 편지가 있다.

은두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였다. 슈미트는 여행 내내 은두구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한과 더불어 그의 퇴직 후 격동했던 과정이 전해졌을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편지에 은두구가 그를 위해 그린 그림 한 장이 들어있다.

두 사람이 서로 한 쪽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다. 아이의 그림이다.

슈미트는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어바웃 슈미트는 슈미트 역을 맡은 잭 니콜슨의 영화다. 아마도 그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독자들에게 어떤 울림도 주지 못하였을 것이다. 잭 니콜슨은 슈미트의 복잡미묘한 심경을 특유의 익살스러우면서도 심술궂은 표정과 몸짓으로 그대로 전달한다. 진정 연기의 달인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묘미를 살린 또 한 명의 인물을 꼽자면 케시 베이츠이다. 사위의 모친으로서 음흉한 노년의 여성을 능글맞게 연기하는데, 케시 베이츠가 등장한 순간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처럼 분위기가 전환된다.

두 사람의 연기가 없었다면 다큐적 영화처럼 매우 지루했을 영화인데, 전설적인 두 배우의 연기로 재미있으면서도 인생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담긴 명작이 되었다.

중간중간 잭 니콜슨과 케시 베이츠가 연기했던 영화작품들의 오마주로 낯익은 장면들이 등장한다. 아마도 감독의 의도적인 숨은그림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슈미트.

뜻대로 뭐 하나 되지 않는 인생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나이를 먹고 노년이 되어도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가득하다.

그저 그 시간을 좌충우돌 지나는 수밖에.

 

다만 위로가 되는 것은 슈미트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

그럴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