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등 감상평

OCN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감상평 리뷰1(줄거리 결말 스포 있음)

조앤디디온 2020. 5. 27. 13:24

 

 

개인적으로 싸이코패스가 주인공이거나 살육과 피가 낭자한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악'에 대한 성찰 없이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악의 실체만을 맹목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면서 타인의 처절한 고통에 대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악의 실존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무리 그것이 허구임을 전제하더라도 고통스럽고 불편하다.

 

그런데 OCN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는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드라마를 보게 하는 어떤 힘이 있다.

먼저 [타인은 지옥이다]는 주인공 윤종우(임시완)를 통하여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에덴고시원 밖 세상과 종우 자신에 대한 것이다. 드라마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그 현실 속 타자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질문하면서 그와 동시에 그 수용자로서 폭력의 대상이 어떻게 폭력을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가에 대하여 묻는다. 드라마는 에덴고시원과 그 밖의 세상을 교차하면서 에덴고시원 밖 세상에서 종우가 겪는 일상을 통하여 그와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다른 한편 [타인은 지옥이다]는 그 질문과는 상관 없이 '악' 그 자체에 대하여 말한다. 우리 안에 있는 악(폭력)과 우리 밖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악(폭력)에 대하여 그 껍데기를 벗겨 속살을 드러낸다. 에덴고시원은 악의 실존을 상징하는 메타포(은유)이다. 처음 종우는 그 일부가 아니었으나 드라마의 전개과정에서 서서히 일부가 되고 종국에는 에덴고시원이 상징하는 악 그 자체로서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드라마는 에덴고시원과 그곳에서 서식(?)하는 인물들을 통하여 실존하는 악을 날것 그대로 재현하는데, 종우를 통하여(이런 점에서 종우 역시 메타포로서 상징된다.) 악은 또 다른 악으로 이어지고 궁극에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먼저 두 가지 질문에서 출발하여 보자.

하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그 현실 속에 타자들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주인공 종우는 가난하다. 어머니는 홀로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시며 생계를 꾸린다. 아픈 이유와 정도를 알 수 없지만 형이 아프다. 그래서 늘 돈이 없다. 서울로 올라와서도 종우는 돈이 없어서 싼 방을 찾고 찾고 또 찾아 어둡고 음산한 에덴고시원까지 간다. 그런데 그런 종우에게 어머니는 돈이 없다면서 오히려 돈을 보내달라고 한다. 대학선배의 배려(?)로 인턴으로 취직하였지만 대표로 있는 그 선배나 직장 선임의 비아냥과 냉대가 선을 넘는다.

종우가 처한 객관적 현실은 종우가 어떤 노력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조건처럼 정해져 있다.

그렇다. 종우가 처한 객관적 현실은 그 조건 자체가 폭력적이다.

 

짐을 끌고 계단을 오르는 종우의 현실. 기생충의 반지하와 미개발지역 꼭대기에 있는 에덴고시원은 위치는 달라도 상징하는 바가 같다.

 

그런 종우가 관계하고 있는 타자들은 어떤가.

대학선배 신재호(차래형)는 부모 잘 만난 금수저 또는 은수저로 대학 졸업 후 손쉽게 문화예술기획 관련 회사의 대표가 된다. 그는 대학시절 작가적 재능이 탁월했던 종우에게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인턴으로 일해 볼 것을 권하고 종우를 서울로 오게 한다. 그런데 그가 종우에게 하는 말들이 어딘가 삐딱하다. 종우의 서울 살이를 걱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고시원에서 살 수밖에 없는 종우의 처지를 비아냥거리고 대인관계에 관하여 충고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종우의 인성이나 성격을 매도하고 힐난한다. 선배라고 하면서 종우를 함부로 하면서도 정작 종우가 후배로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편하게 대하려고 하면 회사의 대표임을 상기시키며 냉정히 선을 긋는다. 자신의 대학후배로서 종우의 여자친구인 민지은(김지은)을 마음에 두고 종종 종우에 대한 자격지심을 드러낸다.

직장 선임 박병민(김한종)은 처음부터 종우를 냉대하는데 자신이 짝사랑하는 직장동료인 손유정(오혜원)이 종우를 다정하게 대하자 노골적으로 종우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병민은 마마보이인데다가 오타쿠적 인물로 종우의 내면에 있는 악마적 폭력성을 자극하는 역할로 설정되어 있다. 병민은 동물적 욕구의 대상으로 손유정의 몸을 탐색하는데, 종우는 그에 대하여 혐오를 느끼고 드라마의 후반 결국 그를 상대로 잠자던 폭력성이 폭발한다.

여자친구 지은 역시 신입으로서 직장(문화예술 관련 홍보회사로 직장상사며 동료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다.)에서 적응해가는 과정이 지난하다. 지은의 직속 상사는 회사 내부적으로 정해진 사무분담의 룰을 어기면서 지은에게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하고, 노골적으로 지은을 비아냥거리며 의도적으로 지은을 고립시킨다. 이유는 없다. 그냥 남자친구가 있고 또 다른 남자(선배 신재호)가 호감을 표하는 대상으로서 지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종우는 고시원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에 대하여 불안감을 호소하지만 지은에게는 종우의 얘기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고시원에서 나오면 그만이지 않느냐"는 짜증 섞인 지은의 말 역시 종우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다.

 

종우와 지은이 속한 사회적 관계의 단면들을 보면서 문득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들처럼 나 역시 누군가를 함부로 해도 된다고 여기거나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들로 폭력적 존재가 되었던 적은 없었을까. 자신이 없다.

(※ 농가상인(弄假傷人) :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 장난 삼아 한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그렇다면 종우(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타자들은 과연 진정으로 폭력적일까. 어쩌면 종우는 그의 주관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현실을 과도하게 폭력적으로 수용했던 것은 아닐까.

종우는 에덴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일들로 위협을 느끼고 점점 더 예민해진다. 종우 스스로 방어적 본능으로 위협에 저항할수록 종우의 내면에 있는 폭력적 성향이 증폭된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에덴고시원이 아닌 정작 고시원 밖 세상이 점점 더 견딜 수 없게 된다.

드라마의 초반, 종우는 무력한 존재로 폭력적 상황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다. 그저 상상으로만 응징하면서 내면의 폭력적 자아와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의 후반, 종우는 선배이자 대표인 재호에 대하여, 선임 박병민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고 내면의 폭력적 자아와 일체가 되어 그들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이 대목에서 문득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떠오른다.).

종우의 폭력성이 점차 드러나면서 에덴고시원 밖 세상에서 폭력적인 존재는 타자들이 아닌 오히려 종우 스스로가 된다.

 

 

 

한편, 종우는 군 복무 시절 선임으로부터 가혹행위를 겪었다. 드라마는 그것이 종우의 기억으로만 재생되어 실재의 일인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폭력적 상황에 처할 때마다 군 복무 시절의 기억이 반복되는 것을 통하여 군 복무 중의 가혹행위가 종우에게 트라우마로 남았음을 추론할 수 있다.

종우가 병장으로서 선임이 되었을 때 고양이를 학대하는 동료 사병을 죽도록 폭행하고도 그에 대한 가책이나 미안함보다는 오히려 그를 죽였여야 했다면서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종우의 내면에 있는 폭력성(악성)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인지부조화※. 우리가 기억하는 경험이 우리의 믿음에 의해 왜곡된 것은 아닌지 즉 실제로 경험한 폭력과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된 폭력적 경험 사이에 간극은 없는지 [타인은 지옥이다]는 종우라는 인물을 통하여 부지불식 간에 질문한다.

(※인지부조화 : 페스틴저(L. Festinger)에 의해 제시된 이론으로 개인은 자신의 믿음, 태도, 행동 등에 있어 일관성을 유지하려 한다는 요지이다. 즉 한 개인의 행동이 믿음, 태도, 행동 등에 있어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특정행동에 대한 믿음이나 태도를 그 행동을 합리적하는 쪽으로 바꾸게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흡연자가 자꾸 자신의 흡연 행위를 합리화 하려는 태도변화를 들 수 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예민해질 때면 가정과 직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에도 격한 반응을 하게 될 때가 있다. 환경이 주는 자극의 크기가 아니라 환경을 수용하는 주체로서 자극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데 때로 그런 반응들이 타자들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종우(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폭력적이다. 타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다. 조건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는 상황 자체가 폭력적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우리가 처한 현실의 현상적 측면으로서 폭력성을 드러내면서  그와 같은 폭력적 상황이 사회(집단)에 속한 개인의 내적 폭력성을 자극하고 궁극에는 또 다른 폭력적 구조로 이어질 뿐이라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현실에 대하여 개인별로 주관적 인식과 심리적 반응, 그리고 행동 양식에 있어 다를 수 있다는 점에 관하여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는 철저히 폭력적 관점에 집중하여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보여준다. 

 

 

-  리뷰 감상평 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