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이 좋다.
내 몸 속 어딘가에 돈을 쫓는, 갈망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돈을 쓰는 것도
돈 그 자체도 좋다.
그런데 나는 기독교인이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셨다.
신께서는 왜 나에게 ‘돈;money’ 유전자(DNA)를 주신 것일까.
나는 예수님을 닮고 싶은데
그놈의 유전자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물려받거나 물려받을 유산이 없는 나로서는
열심히 내 몸과 시간을 사용하여
돈을 벌 수밖에 없다.
돈이 돈을 벌어주지 않는 한
열심히 내 몸과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돈을 버는 고달픔에 매일 힘들다.
그래서 그만해야지 하는데
그럴수록 돈이 사라질까 두렵다.
당장 먹거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여유가 있다거나 만족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돈과 예수님을 모두 섬길 수는 없다.
나는 예수님의 그 말씀을 이해한다.
그리고 감히 따르고 싶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살 수 없는지
결국 유전자를 핑계 댄다.
난 그렇게 창조되었어.
하지만 변명일 뿐이겠지.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들어가
문만 열면 탈출할 수 있음에도
그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지 못한다.
오늘도 나는 감옥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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