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때였다. 바로 그 때.
현관벨이 울린다. 한참을 멜로디가 흐르게 두었다. 그녀는 집에 있을 때 의도적으로 전화나 외부인의 출입에 응대하지 않았다. 언제인가 전화벨소리나 현관벨소리에 심장이 반응을 시작했다. 두근거림. 식은땀. 신체적 반응과 함께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반응이 동반했다. 전화나 현관벨 소리가 멈추고 완벽한 침묵으로 공기가 가라앉을 때 비로소 그녀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 순간의 안도감을 그녀는 원했다. 간절히 원했다. 그 순간의 안도감이 너무 커서 때로는 그 앞서 일어나는 균열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누군가 전화를 걸거나 벨을 누르고, 그녀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며 벨이 멈추기를 기다리고, 그리고 소리가 멈춘다.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런데 그 때 그 순간 울린 현관벨 소리는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구원의 벨소리. 운명이 그녀의 결단을 방해하는 벨소리였다.
천천히 인터폰으로 다가가서 묻는다.
"누구시죠?"
"도시가스예요. 계량기 수치 불러주세요."
"아! 예..."
그녀는 급하게 베란다로 달려가서 계량기 수치를 확인한다. 가스 계량기는 두 개의 숫자 축으로 나뉘어 있다. 한쪽은 검은 색 박스 안에 다섯 개의 단위로 이루어진 숫자가 있고, 바로 옆으로 붉은 색 박스 안에 세 개의 단위로 이루어진 숫자가 있다. 문득 그녀는 자신이 한 번도 가스 계량기 수치를 확인한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늘 남편이 알아서 했고 그녀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두 개의 숫자를 모두 외워서 일단 붉은 색 박스 안의 세자리 숫자를 불러주었다.
"아니요. 그 숫자 말고요.."
"아! 예..." 그녀는 다른 다섯 자리 숫자를 불러주었다.
"수고하세요..." 인터폰 너머로 도시가스 직원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도 여성이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딸이고, 아내이자 직업인으로서 살아가는 한 사람.
그의 삶으로 현미경을 들이대면 어떤 모습일까.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이야기(story)를 부여한다.
다시 커피잔을 든다. 한 모금의 커피가 입에서 목으로, 식도를 타고 위에 이른다.
그녀가 의도하지 않은(정말 그럴까?) 운명의 방해로 연장된 하루. 시간의 초침이 다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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