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아침을 먹고 급하게 나간 남편을 보내고 커피를 들고 베란다 창가로 간다.
5월 바깥 세상은 푸르다. 겨울 내 눌려 있던 모든 생명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성난 모습이다.
문득 그녀에게 비친 5월이 지나치게 탐욕스럽다는 생각이 스친다.
자연 역시 생존 앞에서는 탐욕스러운 면을 드러낸다. 생존이란 결국 치열함에 있고 치열함이란 본질적으로 탐욕스럽다.
다만 자연은 탐욕을 변명하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베토벤 작품번호 135번 4중주 4악장*을 들으며 커피를 마신다. 장중하게 시작하는 멜로디. 그래야만 하는가? 묻고 있다.
그렇다. 그래야만 한다. 그녀는 답한다. 멜로디는 어느 사이 경쾌한 리듬으로 바뀐다. 4대의 현악기가 서로 묻고 답한다.
5월 자연이 내면에 숨겨둔 탐욕을 폭발하듯이 그녀 역시 삶에 대해 가식적 위장을 던져버리고 도약하고 싶었다.
한 모금의 커피. 목과 식도를 타고 내려가 그녀의 위 어느 부위에 이른다. 커피가 위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쓰릿한 고통이 잠시 몸의 모든 신경을 집중시킨다.
그녀의 위 어딘가에는 상처가 있다.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상처가 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위 내시경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상처는 암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가끔 그녀의 심장을 옥죄지만 그녀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직 살 만했기 때문이다. 통증은 오래가지 않았고 충분히 참을 만했다. 어쩌면 그녀는 통증으로 상처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들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의학적으로 진단하고 치료를 통해 통증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상처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확인하는 순간이 더 두려웠다.
입 안은 커피의 뜻 모를 향기로 채워진다.
다시 묻는다. 그래야만 하는가?
그녀는 다시 답한다. 그래야만 한다.
답이 없는 무수한 질문들이 있지만 어떤 질문들은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다. 자기 변명을 위한 고민의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커피를 내려놓고 작은 의자를 끌어다 베란다 난간에 걸친다.
창을 열었다. 5월 바람이 분다. 포근한 공기가 잠시 그녀를 휘청이게 했다.
바로 앞 초등학교 운동장. 아이들은 모두 교실에 있는지 운동장은 텅 비어 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한다. 아이들. 저곳에는 아이들이 있다. 작은 모습의 인간들. 아이들의 작은 손. 그리고 천사같은 미소.
그녀는 의자 위로 올라가 하늘을 바라본다.
베란다 창 밖 세상으로 몸을 던져 비상한다. 새처럼, 새처럼 하늘을 나는 거다.
의자 위 그녀의 다리가 비틀거린다.
*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모티브를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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